[Beverage Issue] 포도에서 참다래까지, 한국 과육 머금은 한국와인의 맛 -②

2019.09.19 09:20:32

어제 [Beverage Issue] 포도에서 참다래까지, 한국 과육 머금은 한국와인의 맛 -①에 이어서..


원재료 확보에 어려움 많아
2000년대 후반부터 자리 잡기 시작한 지금의 와이너리는 대부분 농가형이다. 직접 원재료를 재배하고 재배된 원재료를 가지고 와인을 양조하는 것이다. “현재 와인 생산자들은 좋은 과실을 생산해 좋은 와인을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농사를 지어 와인을 만들고 판매 및 와인에 대한 서비스까지 이뤄져야 하는 6차 산업의 단계까지 가기에는 아직 힘든 점이 많다.”며 최 소장은 현재 와이너리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의 와인 원재료는 대개 재배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때문에 생산자가 재배한 원재료만큼 그 해의 와인이 생산된다. 그래서 와인의 수요는 높아지는데 원재료 확보가 어려워 양조에 들이는 시간보다 농사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해외 와이너리처럼 네고시앙의 형태로 운영하면 되지 않느냐고 의문을 제기해도 대답은 ‘글쎄’였다. 청수, 청향, 알렉산드리아와 같은 품종들은 와인의 원재료로 쓸 요량이 아니면 재배하기 힘든 품종이기도 하고, 그동안 비슷한 형태로 계약을 맺은 농부들이 농사가 잘되면 약속한 분량을 와이너리에 주지 않고 생과로 팔아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해 재배를 다른 이들에게 맡기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 소장은 “산업화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양조가들이 양조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농민들이 한국와인에 대한 공감이 충분히 이뤄져야 할 듯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제한된 와인생산으로 유통의 한계점도 많다. 레스토랑에 리스트업된 몇몇 와인은 전국에 100개가 채 남지 않을 정도로 품귀현상도 일어나고, 단가가 비싼 편인데 아직까지 희소성이 높지 않은 와인들이 대부분이라 수입와인과 비교했을 때 가격경쟁력이 없는 현실이다.


“당면한 과제 많지만 계속해서 한국와인의 저변 넓혀 나갈 것”
한국와인생산협회 정제민 회장



최근 한국와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단계인데 협회에서는 이를 어떻게 보고 있나?
그동안 협회에서도 한국와인 소비에 대한 부분에 고민이 많았다. 열심히 만들어 놨는데 팔 곳이 없는 것이다. 현재 와인 생산자들은 원재료 재배에 와인 양조까지도 벅찬 상황이기 때문에 판매에 대한 고민을 늘 해왔다. 게다가 와인의 대중화가 다른 술에 비해 많이 부족한 편이다. 1년에 성인 1인당 소주는 86병, 맥주는 177병 소비된다고 하는데 와인은 0.93병에 그친다. 1년에 성인 한 명이 와인 한 병을 채 마시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몇몇 와이너리는 전통주의 범주에 들어가 있어 통신판매가 가능해 그나마 숨통은 트였는데 그마저도 소주, 맥주, 막걸리와 같이 소비용이 아닌 선물용 정도다.


그러나 다행히 개인의 기호에 맞는 소비를 하는 20~30대를 중심으로 한국와인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고, 소믈리에들이 한국와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현재 상황은 고무적이다. 특히 정하봉, 최정원, 노태정, 김협 소믈리에와 같은 소믈리에 그룹에서 리더 격인 이들이 나서고 있어 여러모로 아직까지 부족함에도 협회장으로서 고맙고 뿌듯할 따름이다.


비교적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한국와인은 그동안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궁금하다.
해외와인 같은 경우에는 지역과 원료가 기준이 된다. 이를테면 어느 지역의 어느 마을, 누구의 포도밭에서 어떤 이가 양조했는지가 와인의 품질과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인데 우리나라는 와인도 대기업 위주의 대량생산, 대량판매로 인해 그저 공산품에 지나지 않았다. 원료와 생산자, 생산지역의 문화를 궁금해 하기보다, 대기업이니까 믿을 만하겠지, 어디 기업 와인이라 먹는다는 것이 소비자 선택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와인의 브랜드가치가 오래가지 못해 유행이 지나면 폐기되고 신제품이 나오기를 반복했다. 와인을 생산하던 기업들이 그저 자본주의의 논리만 가지고 와인산업에 접근했던 것이다. 그런 접근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파라다이스와 노블와인과 같은 것들은 남지 않게 됐다. 시간이지나 이제는 소규모의 와이너리들이 영세하지만 프랑스나 유럽의 와이너리 형태를 조금씩 갖춰가고 있다. 원료 생산과 와인 제조가 함께 이뤄지는 샤또의 개념인 것이다. 그리고 와이너리들이 품종이나 품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와인의 성장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소믈리에들이 와이너리에 와서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와서 보니 단순히 맛과 품질이 아니라 한국와인이 왜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원료들은 어떻게 생산이 되는지, 한국와인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직접 와이너리에 와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맛볼 수 있는 그런 체험 형태의 프로그램이 활성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찾아가는 양조장에 선정된 와이너리가 총 8곳이다. 와이너리 관광은 비단 와이너리 뿐만 아니라 지역관광, 농업과도 연계돼 있는 큰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와이너리에도 가을이 되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꽤 찾아온다. 물론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은 곳들에 비교하면 그들이 봤을 때 소꿉장난 정도 수준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의외로 관광객들은 한국에 와이너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에 흥미를 가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나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프랑스, 이탈리아와 비교했을 때 수준 높은 와인의 퀄리티가 아니라 ‘한국’의 와인의 스토리다.


그렇다면 한국와인의 스토리를 갖춰나가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가까운 일본만 보더라도 몇 대(代)째 내려오는 와이너리들이 많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때 와이너리가 있었다. 바로 ‘주막’이다. 주막은 지역 쌀로 술을 빚어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이자 잠자리를 제공했던 호텔이었다. 각 지역마다 이런 역사와 전통을 가진 주막형태의 양조장이 대를 이어왔다면 아주 좋은 관광자원이 됐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 많다.


와이너리 업무의 반은 농업인데 직업에 귀천을 뒀던 것 같다. 그러나 한국와인이 조금씩 자리 잡히면 3D 중의 3D라고 불리던 요리사가 셰프의 자리에 오른 것처럼 와이너리 양조장들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산사과와인은 외국에서 양조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과 식품산업과를 전공하고 있는 딸에게 물려줄 생각이다(웃음).


한국와인생산자협 회장으로서 앞으로의 협회운영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사실 아직까지 생산자들이 자기발등에 떨어진 불끄기 바쁜 상황이다. 영세한 와이너리가 대부분이고, 와인 생산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나 정책도 미비하기 때문이다. 한국와인의 위상이 조금씩 높아지려고 하는 이 시기에 정부에서 와인산업을 보는 시각이 와인 생산지와 농업과는 전혀 동 떨어져 있고, 일제시대 때부터 진행됐던 주세법 체계가 불합리한 부분도 많다. 물론 나또한 와이너리 운영에 정신없는 상황이지만 최대한 한국와인과 와이너리의 이름을 곳곳에 알리기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한국와인에 대한 관심 요구되는 때
조금씩 물꼬를 터 가고 있는 한국와인이지만 아직까지 소규모 가족중심의 경영 형태, 불합리한 세금구조로 품질개선 투자의 어려움, 한국와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부족, 쉽게 접근하기 힘든 유통구조, 산발적인 정부 정책 등으로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한국와인의 주산지인 영동군에서는 2016년 동안 한국와인과 관련된 총 11개 사업을 약 16억 원의 지원을 통해 성공적으로 유치, 한국와인의 고장이라는 평가를 얻으며 지금까지도 군의 존재로 한국와인의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최 소장이 홍천 와이너리와 진행한 팜 파티가 지역 식재료 디너와 홍천 와인의 페어링으로 반응이 좋았는데, 이후 홍천 와이너리에서 이를 자체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표한 「2018 주류소비 트렌드 조사」에 따르면 한국와인의 인지도는 59.2%, 주로 연령이 높을수록 인지도 또한 높게 나타났으며, 한국와인 구매경험은 45.1%로 40대 남성, 20대 여성에서 구매경험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후에도 한국와인을 구매할 의향에 대해 77%가 재구매의 의사를 긍정적으로 밝혀, 보다 마케팅이 활발히 이뤄진다면 앞으로 한국와인 시장의 외연이 더욱 확장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앞으로 국산와인이 아닌 한국와인으로, 누군가 한국와인을 모르는 사람이 묻는다면 ‘한국와인이란 자랑스럽게 이런 것이다!’라고 소개할 수 있는 저변이 계속해서 확대되기를 바라본다. 



“한국와인에 대한 깊은 연구와 통찰 이뤄져 앞으로가 더욱 기대 돼”
광명동굴 최정욱 소장



한국와인의 대중화를 위해 광명동굴에서도 대외적으로도 많은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소감이 어떤가?
한국와인을 다룬지 5년이 돼 가는데 이제야 홍보효과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 기쁠 따름이다. 그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꾸준히 한국와인을 소개하고, 인식개선을 위한 특강, 잘못된 기사나 정보가 있으면 수정을 요청해온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됐다. 국제품평회에도 원래는 포도를 원료로 한 와인밖에 출품이 안 됐었는데 2017년부터는 오미자, 오디, 딸기와 같은 베리류도 출품하게 됐다. 그 해에 오미로제 와인이 베스트 한국와인상을 받았다. 한국와인의 저변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어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이번 메이커스 디너에서 한국와인과 양식과의 페어링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고 하는데 어떤 점이 와 닿았나?
한국와인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십분 활용해 한국와인이 돋보일 수 있는 페어링이 이뤄졌다는 점이 아주 인상 깊었다. 한국와인이 타닌과 산미가 비교적 적기 때문에 그래도 잘 어울릴 수 있는 백그라운드는 한식이 베이스된 음식인데 이번 메이커스 디너를 통해 양식과 어울려도 충분한 시너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번 디너에 선보였던 샤토 미소 스위트 로제는 스위트한 와인이어서 보통 디저트와 매칭이 이뤄지는 와인인데 특이하게 식사 중간에 20가지 야채와 허브를 활용한 샐러드와 함께 제공됐다. 다소 의아한 조합이었는데 샐러드의 산뜻함과 어우러져 음식과 와인의 궁합이 아주 좋았다. 노태정 소믈리에가 음식과 와인에 대해 깊이 해석하고 연구했다는 것이 느껴지는 페어링이어서 아주 의미 있는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와인의 인지도가 높아지는 만큼 앞으로도 해볼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 같다. 시도해보고 싶은 행사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광명동굴에서 진행하는 와인품평회 뿐만 아니라 영동에서 주최하는 와인축제도, 소믈리에들이 각자 기획하고 있는 행사도 많이 준비돼 있다. 한국와인을 매개로 열릴 수 있는 행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앞으로는 생산자들의 갈라디너가 아닌 와이너리 단독 디너를 진행해보고 싶다. 생산지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울에서 페어링이 잘 된 음식과 한국와인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한국에 한국와인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데 중점을 뒀다면, 이제는 보다 소비자들이 한국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생산자, 소믈리에와 함께 힘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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