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호의 Tea Panorama 21] 찻잎 성분, 우러나는 시간 모두 달라

2015.06.09 10:08:19

차의 준비와 음미의 배경지식 ⑤

일본 메이지 시대 사상가 오카쿠라 가쿠조(岡倉覺三, 1862∼1913)가 일본식 티타임인 차노유(茶の湯)를 ‘일상생활 속에서 소소한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라고 했던가!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차를 우리며 기다리는 여유 속에는 놀라운 과학도 숨어 있다.
소소한 아름다움 속 그 놀라운 과학을 찾아본다.


찻잎 성분, 용해 속도 각기 달라
차를 우리면서 ‘느림의 미학’으로 여유롭게 기다리고, 마시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차의 향미를 찻잎의 특성에 맞게, 또는 자신에게 맞게 우리는 데는 시간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즉 차의 향과 맛을 결정하는 함유 성분들이 물에 용해되는 속도가 모두 다르며 그것이 우러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 또한 모두 상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테인(카페인)은 건조 찻잎을 우려내는 1분 이내에 약 80%가 우러나온다. 반면 타닌이 약 80%가 우러나오는 데는 약 7분 이나 걸린다. 이처럼 찻잎의 함유 성분들이 우러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제각각인 것은 각 성분들의 분자량과 화학적 조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를 마시는 사람이 만약 테인의 각성적 효과에 예민하다면, 그 테인의 함량을 줄이기 위해 약 20~30초간 차를 우려낸 후 그 찻물을 버리고 다시 차를 우려내 마시면 된다. 단 고품질의 그랑크뤼급 차나 독특한 향미의 차들은 위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향미의 균형이 깨져 차의 제 맛과 향을 즐길 수는 없다.


서양차는 적은 찻잎으로 길게, 중국차는 많은 찻잎으로 짧게
차를 우리는 방식은 동서양이 각기 다르다. 또한 차에 따라서 우리는 시간도 다르다. 보통 서양차는 적은 양의 찻잎을 긴 시간에 걸쳐 한 번 우린다. 반면 중국차는 보통 많은 양의 찻잎을 짧은 시간에 여러 회 우린다. 우롱차가 대표적이다. 물론 중국차라도 찻잎의 발향에 긴 시간이걸리면 서양식으로 우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긴 시간에 걸쳐 우린 찻잎은 보통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차마다 우리는 시간이 이처럼 다른 것은 각 차마다 찻잎의 함유 성분이 다르고, 또한 그 우리는 시간에 따라 그 성분이 우러나오는 양이 달라져 차의 향미도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녹차의 경우, 찻잎을 긴 시간 우리면 차에서 쓴맛이 난다. 타닌 성분이 집중적으로 방출돼 다양한 성분의 균형이 무너져 결국 떫은맛이 강해지는 것이다.


제조 방식에 따라서도 우리는 시간 달라
중국차는 일반적으로 찻잎을 솥에서 덖는 초청의 방식으로, 일본차는 찻잎을 증기에 찌는 증청 방식으로 건조해 생산하고 있다. 이런 건조 방식의 차이로 인해 중국차는 보통 일본차보다 쓴맛과 떫은맛이 덜하다. 왜냐하면 건조 방식의 차이로 중국차는 일본차보다 찻잎에 쓴맛과 떫은맛을 내는 폴리페놀류인 타닌과 단백질 성분의 화합물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시간을 우리더라도 일본차는 중국차보다 쓴맛과 떫은맛이 더 강한 것이다.


일본차는 왜 짧게 우려내 마시는가?
일본에서는 증청 방식으로 생산된 차의 떫은맛과 쓴맛을 줄이고 차의 맛에서 최우선으로 여기는 감칠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찻잎을 우리는 시간을 짧게 한다. 차를 우리는 시간이 길면 녹차의 감칠맛을 담당하는 아미노산과 테아닌 등의 성분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차를 우리는 시간을 짧게해 아미노산과 테아닌이 비교적 풍부한 상태에서 폴리페놀류의 떫은맛을 감소시켜 감칠맛을 보다 극대화한다.
결국 차를 우리는 데 있어서 시간의 의미는 찻잎에서 우러나오는 성분과 그 양을 결정해 독특한 향미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차의 크로마토그래피’인 셈이다.


세계의 명차 20

타이핑허우쿠이 녹차(太平猴魁, 태평후괴, TAI PING HOU KUI)

안후이성 타이핑현(太平縣) 황산 산(黃山)에서 일 년에 한 번 초봄에 수확해 생산하는 홍청 녹차이다. 홍청(烘靑)이란 열기를 이용해 건조하는 방식이다. 문학 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며, 그 유래에 관한 전설로도 유명하다.
한 전설에 따르면, 이 차나무의 서식지는 사람이 오르기에는 너무도 가팔라 지역 주민들이 원숭이를 훈련시켜 찻잎을 따오도록 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우두머리 원숭이’라는 뜻의 ‘후괴(猴魁)’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타이핑허우쿠이’라는 이름은 1850년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에서 유래했다는 것. 찻잎을 우리면 잎맥이 선홍색으로 변하는데, 이는 태평천국의 난에서 반군이 흘린 피였다는 것이다.
타이핑허우쿠이는 그런 전설의 유명세만큼이나 외관이 아름답고 향미가 독특하기로도 유명하다. 유리잔에 넣고 뜨거운 물로 부으면 초록빛으로 선명한 두 찻잎이 싹을 중심에 두고 꽃처럼 피어난다. 다른 차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독특한 광경이다. 또한 그 향미도 난초의 꽃 향에 비견될 정도로 화려한 향과 풍부한 맛을 간직하고 있다. 손으로 직접 가공한 찻잎은 생산량이 굉장히 적어 매우 귀하다.
※ 차의 이름은 ‘중국어 병음의 한글 표기법’에 따라 표기함.
마시는 법) 400㎖ 용량의 서양식 티팟에 4g 정도의 찻잎을 95℃의 물 로 3분간 우린다.
              자사호나 개완에는 약 3g의 찻잎을 80~85℃의 물로 2~5분간 우린다.

<2015년 6월 게재>


정승호
(사)한국티(TEA)협회 회장, 한국 티소믈리에 연구원 원장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은 국내 최초의 티(TEA) 전문가 양성 교육기관 및 연구 기관이다.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에서는 글로벌 시대에 맞게 외식 음료 산업의 티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백차, 녹차, 우롱차, 홍차, 보이차, 허브차 등 거의 모든 분야의 티를 시음하며 향미를 감별하는 훈련과정(Tea Tasting&Cupping)과 티 산지 연수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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