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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verage Issue] 포도에서 참다래까지, 한국 과육 머금은 한국와인의 맛 -①


한국와인이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소믈리에들의 한국와인에 대한 관심으로 그동안 한정적으로 유통돼 오던 한국와인들이 곳곳에서 얼굴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한국와인이, 게다가 와이너리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에게 한국와인은 호기심의 대상이 됐고, 평소 한국와인에 관심을 갖고 있던 이들은 이제 호텔에서도 한국와인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반갑기도 하다. 수 백 년 역사의 프랑스와인과 비교한다면 짧디 짧고, 이제와 관심받기 시작한 점에 비춰보면 나름 무명의 시기는 길었던 한국와인. 소믈리에들은 한국와인의 어떤 매력에 빠진 것일까?


‘파라다이스’에서 태어나다
한국 와인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무려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포도주’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와인. 고려시대의 ‘쌀머루주’였다. 국순당이 ‘우리 술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복원하기도 했던 쌀머루주는 포도과에 해당하는 머루를 쌀과 누룩으로 빚어 발효시킨 술이었고, 머루의 재배지가 일정 지역에 제한이 있어 일부 왕족들 정도만 즐기는 고귀한 술이었다고 한다.


근대에 와서 한국와인의 기원을 찾는다면 1969년에 처음 생산된 사과와인 ‘파라다이스’가 시초라 할 수 있다. 파라다이스는 당시 정부에서 곡물이 부족해 쌀로 만든 술보다 과일로 만든 술의 양조를 장려하면서 탄생하게 됐다. 이후 정부의 과실주 장려정책으로 여러 대기업들이 와인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1974년 해태에서 최초로 포도와인 ‘노블와인’을 출시한 데 이어 롯데주류의 마주앙(당시 두산주류), 대선주조의 그랑주아, 진로의 샤토 몽블르와 같은 와인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수입와인들이 대거 들어오게 되면서 가격경쟁력이나 품종개발 면에서 경쟁에서 버티지 못하고, 대기업 주도로 이뤄져 왔던 와인들은 잠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러다 1990년 중반, 현재까지도 한국와인의 주 생산지인 충북 영동과 경북 영천을 중심으로 한국와인은 다시 조금씩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영동은 1996년 기업형 와이너리 ‘와인코리아’의 설립으로, 영천은 2008년 시작된 ‘와인클러스터사업’을 통해 와이너리가 하나씩 들어섰다.


와이너리, 영동과 영천 중심으로 자리 잡다
전국의 한국와인을 찾아 불철주야인 광명동굴의 최정욱 소장(이하 최 소장)에 의하면 현재 국내 와이너리는 약 150개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아직까지 신뢰할만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추정 해보면 현재 광명동굴에 들어와 있는 와이너리가 63곳이고, 영동·영천의 와이너리 중 입점이 안 된 곳이 60군데, 알려지지 않은 곳이 30군데 정도 되는 것 같다.”면서 “와인의 종류로는 동굴에 있는 와인이 230종 정도고, 대부분의 와이너리는 보통 3~4개 정도의 종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약 500~600종의 와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귀띔했다.



국내 와이너리들은 2010년부터 와인의 고장 영동과 영천을 중심으로 무주, 함양, 대부도 등의 지역에 골고루 분포돼 있다. 한국와인을 대중에 알리기 위한 행사도 다양한데, 대표적으로 2010년부터 영동에서 주최하고 있는 ‘대한민국와인축제’가 있으며 와인품평회로는 영동 주최의 ‘한국와인대상’, (사)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가 주관하는 ‘한국와인 소믈리에 경기대회’ 등이 운영 중이다.


저변에 숨어있던 한국와인, 유통에 활기 띄기 시작해

한국와인이 대중들에 소개된 것은 광명동굴의 영향이 크다. 2015년 4월, 당시 광명시장이었던 양기대 시장과 최정욱 소장이 함께 한국와인 200여 종을 선보였다. 그리고 광명동굴이 여름에는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데만 2시간이 걸릴 정도로 핫한 관광지로 떠오르면서 한국와인도 많은 이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더 플라자 호텔 ‘르 캬바레 시떼’의 최정원 소믈리에는 “광명동굴에서 한국와인을 소개하면서 한 해에 5만 병씩 팔리다보니 소비자의 직간접적인 피드백이 생산자들에 전달, 한국와인의 품질도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게 긍정적으로 변화했다.”며 광명동굴이 한국와인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한다.


한편 최근 한국와인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하는 소믈리에들의 움직임도 남다르다. 작년 2월 최 소장을 시작으로 각기 다른 테마의 와인행사가 한국와인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소믈리에들 사이에서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지난 7월 24일, ‘앙스모멍 시그니처’에서 노태정 소믈리에가 주최한 ‘한국와인 메이커스 디너’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메이커스 디너에는 총 7개 와이너리의 한국와인이 제공됐으며, 한국와인의 장점은 부각시키고 단점은 상쇄시키는 이색적인 페어링이 인상적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노 소믈리에의 바통은 JW 메리어트 서울의 정하봉 소믈리에가 이어받아 예산사과와인의 정제민 대표와 함께 ‘한국와인 메이커스 뷔페’를 지난 29일 선보였다.


최근 몇몇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한국와인을 리스트업해 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동안 한국와인의 불안정한 품질로 인해 특히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이를 들여놓기가 쉽지 않았던 터. 게다가 인지도도 낮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어필이 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상황에서 소믈리에들이 위험(?)을 무릅쓰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컸다. 그러나 지난 7월 초, 더 플라자 호텔에 새로 오픈한 바 ‘르 캬바레 시떼’에는 한국와인을 13종 리스트업, 이어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의 뷔페 ‘플레이버즈’에도 10종의 한국와인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어떻게 한국와인을 소개하고자 했는지 르 캬바레 시떼의 리스트업을 맡은 최정원 소믈리에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특급호텔에서 소개하는 한국와인, 외국인 고객들 반응 뜨거워”
더 플라자 호텔 르 캬바레 시떼 최정원 소믈리에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 때에도 한국와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국와인을 바에 리스트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한국와인은 최정욱 소장과 함께 2017년부터 와이너리를 하나씩 다니면서 애정이 더 각별해진 것 같다. 앉아서 얘기만 듣는 것과 실제로 가서 보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특히 와인 제조에 사명감을 갖고 있는 생산자들을 직접 만나보니 더욱 한국와인을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품평회에 가 봐도 매년 와이너리들의 와인 품질이 향상되고 있었고, 작년쯤 돼서는 5성급 호텔에 소개할 수 있을 정도의 와인들이 눈에 띄어 리스트업 하게 됐다.


한꺼번에 13종이나 리스트업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리스크가 큰 것은 사실이다. 아직 전반적으로 QC가 완벽히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변수는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리스트업한 와인들은 그동안 눈여겨봐왔던 와인들이고, 직접 보고 경험했기 때문에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소믈리에에게 있어서 와인 리스트는 보물지도와도 같다. 고르고 골랐기 때문에 손님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와인에 대한 이해는 당연 필수다.


한국와인에 생소한 고객들이 많았을 텐데 실제 고객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오픈한지 한 달쯤 됐을 때 4차 발주가 진행됐다. 80병 넘게 판매됐고, 어떤 고객은 시음 후 12병을 사가기도 했다. 반응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편이다. 더 플라자 호텔이 위치한 곳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인데 한식과 한국 술을 접할 공간이 그동안 마땅치 않았다. 대개 삼청동이나 인사동으로 넘어갔었는데 이번 오픈으로 이영라 셰프의 음식과 한국와인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환영받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얼마전 소속돼 있는 어반딜라이트 지배인 미팅 때 6종의 와인을 가져가 지배인들에게 소개했더니 다른 업장에서도 한국와인 리스트업에 관심을 보이더라. 가까운 소믈리에들로부터 문의도 들어오고 있고, 곧 지금보다 더 많은 곳에서 한국와인을 만나볼 수 있을 듯해 반가울 따름이다.


소믈리에들의 관심이 계속되고 있어 한국와인 시장이 앞으로도 커질 것 같다.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지난 4월 6일에 한국와인의 발전을 위한 의미 있는 모임이 있었다. 바로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의 주관으로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한국소믈리에협회, 한국와인협회, 한국와인생산협회, 네 협회가 한데 뭉친 것이다. 메이커 디너와 같은 행사도 어찌보면 협회에서 한국와인에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시도해보려고 하는데 현장에 있는 우리들도 힘을 합쳐보자는 의기투합이 이뤄진 것 같다. 이로 인해 현업에 있는 소믈리에들의 시너지가 커지고 있다. 한국와인은 느리지만 분명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와인을 소개하는 소믈리에들의 관심이 계속해서 커지길 하는 바람이다.



어떤 와인이 한국와인인가?
‘한국와인? 국산와인? 복분자도 과실주인데 그럼 와인인가?’ 한국와인에 관심이 생긴 이들이라면 자연스레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한국와인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포도 외에도 감, 오미자, 매실, 청귤, 머루, 오디와 같은 과실을 이용해 만드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과실의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한국와인의 매력인데 기존에 갖고 있던 포도 와인이라는 인식이 커 한편으론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면도 있다. 그렇다면 정확히 한국와인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주세법상 와인의 분류
일반적으로 와인을 취급하는 유럽법령상의 ‘와인(Wine)’은 ‘포도가 송이채 혹은 으깨지거나 즙 상태일 때 일부 혹은 전부를 발효시켜 알코올이 함유된 음료’를 말한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의 와인은 ‘과실을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 함유 음료’로 그 과실의 종류가 포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매실주와 매실와인을 비교해 예로 들어보자. 매실주는 매실을 설탕, 소주와 함께 담가 익힌 ‘혼성주’고, 매실와인 ‘에델와인’은 매실을 으깨 알코올 발효 후 숙성단계를 거친 ‘발효주’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주세법상에는 혼성주와 발효주가 함께 ‘과실주’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와인 중에 지역에서 난 과일로 만든 와인은 전통주 중 ‘지역 특산주’로 분류, 카테고리 분류가 명확하지 못해 명칭에 대한 통일이 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최 소장은 “한국와인은 과세표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와인은 술에만 세금이 붙는 것이 아니라 포장지와 병에도 세금이 붙는다. 전통주는 세금지원을 받기 때문에 완제품에 마케팅까지 포함된 가격”이라며 “대부분의 한국와인은 지역 특산주에 속하고, 일부 와이너리는 다른 지역에서 수매해온 과실로 양조하기 때문에 과실주에 포함된다. 수입와인도 과실주에 속한다. 한국 와이너리에서 재배된 과실로 만든 한국와인이 지역 특산주인 것은 맞지만 이들을 전통주라 하기에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현 주세체계를 꼬집었다. 이에 따라 지역 특산주를 전통주에서 따로 분리하자는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지만 전통주에 대한 세제지원이나 혜택에 대한 부분으로 쉽게 의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와인? 국산와인?
체계를 갖추려면 용어가 정리돼야 하는데 소비자들이 가장 혼용해 쓰는 명칭이 ‘국산와인’이다. 최 소장은 “한국와인과 국산와인은 다른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국산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모든 것들을 총칭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수입한 원액으로 만든 와인도 포함된다. 한편 한국와인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원재료를 직접 재배, 양조한 술’이다. 즉, 국내 원재료에 대한 가치를 명확히 하기 위해 이를 구분해 사용하는 것. 따라서 프랑스와인, 이탈리아와인, 미국와인으로 부르는 것처럼 이제 국산와인 대신 ‘한국와인’을 부르는데 익숙해져야겠다.


즉, ‘한국와인’은 ‘한국 땅에서 재배한 과실을 파쇄 및 발효한 술’이다.


... 내일 이어서 [Beverage Issue] 포도에서 참다래까지, 한국 과육 머금은 한국와인의 맛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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