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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 리조트

[Reader's Essay] 손탁 호텔 표지석에 대한 이야기

손탁 호텔 표지석

독자 이현규
※ 본 에세이는 호텔앤레스토랑 11월호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은?’ 기획기사를 보고 독자분께서 보내주신 기고문입니다.



오랜만에 동인들과 봄나들이 겸 해설과 함께 하는 정동길 답사에 참여했다. 시작 전 미리 덕수궁에 모였다. 꽃 대궐이라는 동요 가사처럼 덕수궁은 꽃잔치 중이다. 궁을 돌아보며 봄의 상징인 진달래부터 오래된 모과나무, 능수 벚꽃나무, 할미꽃 하나하나에도 감동하며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이야기꽃이 넘쳐난다. 반면에 체험학습 온 학생들은 꽃이나 나무보다는 친구들과 사진 찍기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우리들도 당시에는 그랬을까 하고 기억을 더듬어본다.

곧이어 시작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정동교회, 시립미술관, 배재고, 이화여고, 러시아 공사관 탑을 찾았다. 오래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는 정동 길은 역사를 담은 공간이다. 당시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대사관 대부분이 정동 길에 자리 잡았다. 그중에는 아관파천을 주도한 러시아 공사관도 있다. 현재는 공사관 탑만 남아있지만 해설사가 보여주는 규모가 컸던 옛 사진에 한참 눈길이 간다.

러시아 공사 아내의 언니인 손탁. 러시아 공사의 소개로 궁중에 들어와 여러 나라 언어도 잘하고 우리나라 말도 빨리 익힌 여성이다. 궁중에서 서양식 연회도 주관하고 접대를 담당했다. 궁중에 그런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여성이 당시로서는 드물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역할은 컸으리라 짐작된다.

당시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임을 받았고 아관파천 때도 관여했던 그녀다. 고종이 고마움의 표시로 손탁에게 한옥을 하사했다. 그녀는 한옥을 숙소로 개조해 손탁 호텔을 운영했고 최초의 호텔이기도 했던 이곳은 열강들의 공식, 비공식 회담의 장소로 사용됐다. 당시 서울에 숙소가 드물었기에 정동을 드나들었던 외국인들이 주로 묵는 고급 호텔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텔은 오래 운영되지 않고 1918년 문을 닫았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이화여고가 이곳을 인수해 기숙사로 사용했다. 호텔 시설을 기숙사에 맞게 개선했을 것이다. 여성이 집을 떠나 생활하는 것을 상상 못할 시기였던 그 당시 여학생들에게 기숙사는 낯설 었으리라. 지금도 대학생들이 처음 집 떠나 생활하는 기숙사 생활에 대한 약간의 환상이 있는데 여성의 교육도 드문 시절이기에 지금의 환상과는 또 다른 면으로 두려움, 세간의 시선 등이 몇 배나 더해졌을 것이다.

손탁호텔에서 기숙사로, 후에 다른 건물로 지어지기도 하고 화재로 손실이 되는 과정을 거쳤다. 최근 그 자리에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이 탄생됐다. 학교 행사도 하고 일반 공연도 하는 곳이다. 몇 년 전 그곳에서 정태춘, 박은옥의 공연을 본 적 있다. 그날은 공연에만 관심 있었기에 ‘이화여고가 이처럼 오래됐구나’하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답사하며 100주년에 담긴 역사와 더불어 모르던 부분에 대해 알게 됐다. 집에 돌아와 궁중 연회를 주관하던 손탁이 여러 나라 외교사절들과 함께 찍은 사진, 서양풍 건물인 손탁 호텔 옛 모습 사진도 찾아봤다.


궁중의 적극 후원을 받아 오래 유지할것 같은 호텔이 왜 문을 닫았는지 궁금했던 사실도 알게 됐다. 명성황후에 이어 고종이 승하하고 러일 전쟁에서는 러시아가 패했다. 을사늑약으로 일제 강점기가 시작됐으니 러시아가 밀려나고 그녀도 러시아로 돌아간 것이다. 그녀는 32살에 조선에 들어와 56살에 러시아로 돌아갔다. 당시 관리들이 가까이하고 싶어 했을 정도로 유명했던 그녀처럼, 손탁호텔 역시 명성과 화려함에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녀도, 손탁호텔도, 이화여고 내 기념관 앞에 단순하고 눈에 띄지 않은 손탁호텔 표지석으로만 남아있다. 작지만 이 표지석 안에는 호텔 명칭에 이름까지 내걸은 손탁 개인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역사까지 담고 있다. 열강들 속에서 눈치를 봤던 시기라 좋은 느낌보다는 애달픔이 연상된다.

러시아 공사관 근처 캐나다 대사관 앞 인도에는 520여 년 된 회화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캐나다 대사관이 건물을 지으며 회화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건물을 뒤편으로 자리 잡아 설계했다고 한다. 종로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다. 표지석만 남은 명성 속 손탁호텔에 비하면 회화나무는 오랜 세월 역사 속에서 오롯이 한자리를 굳건히 지켜낸 것이다. 그동안 희로애락을 다 겪으며 보아왔을 회화나무 나무 기둥에 나도 모르게 손길이 간다. 요즘 표현으로 ‘쓰담 쓰담’ 해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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