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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 Culinary

[The Chef_이금희편] “지켜야 할 것은 양보하지 않아야 한다.” 최초의 특급호텔 여성 총주방장 이금희 셰프

어느 때 보다도 한식이 화두에 올랐다. 한국인과 동고동락 하면서도 변변히 대접받지 못하던 한식이 다양한 콘셉트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격변하는 외식 트렌드 속에서도 지켜야 할 것은 고집스럽게 지켜내고야 마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음식을, 전통을, 문화를 지키는 한식 셰프 이금희로 오늘을 살고 있다.


손 없는 말날(午日), 장이 잘 되려는지 그날은 유난히도 하늘이 좋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올까 장 가르기 하는 날 14시간 근무를 하면서도 온통 관심은 장맛에만 집중돼 있었다. 오랫동안 정성을 기울여 돌봐야 하고, 말도 걸어주고, 구수하게 익어가는 냄새를 따라 계절이 바뀐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 맛이 나오는 장처럼 그의 인생도 농익은 맛이 깊어졌다. 세월이 지나 27년. 한식에만 올인해 지난해 10월 메이필드 호텔 한식부 총주방장이 됐다. 특급호텔에서 그것도 여성 총주방장이라니. 사람들은 유리천장을 깼다고 좋아라했지만, 한눈 팔지 않고 꾸준히 제 갈 길을 걸어온 표식이라 여긴다.

서산의 바닷가 마을에서 보낸 유년시절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소녀는 바구니를 옆에 차고 엄마를 따라 뒷산으로 나물 뜯으러 다녔다. 높고 험한 산도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며 홑잎나물, 취나물, 고사리, 엄나물, 두릅.. 종류를 가릴 것 없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물 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날이 어두워지면 집 앞 갯벌에서 바지락, 능쟁이, 고동, 소라, 낙지, 게를 주워 담으며 놀았는데, 탈각한 물렁게를 잡아다가 솥에 넣고 쪄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고향 바다는 그렇게 유년시절의 놀이터였고 여전히 삶의 휴식처다.
“지금도 머리가 복잡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고향집에 다녀오곤 해요. 어릴 때처럼 바구니를 옆에 차고 나물을 뜯다보면 어느새 머리가 맑아지거든요. 요즘은 참나물을 대부분 재배해서 고유의 향이나 맛이 느껴지지 않고 밋밋해요. 재배된 나물이 대부분 그래요. 자연이 주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요. 게다가 재배한 식재료는 데치면 맛과 향이 감산되기 때문에 조리법도 신경 쓸 수밖에요.”
어찌 보면 자연이 주는 특혜를 누리고 살았던 게 아닌가 싶다. 늘 신선한 재료들을 접해온 탓에 일반인보다 후각과 미각이 예민해졌고, 맛을 감별하는 탁월한 능력을 후천적으로 단련할 수 있지 않았던가.

“저 게 도망간다. 얼른 주워 담아!”
10kg짜리 상자에서 집게를 치켜세운 게들이 호텔 주방 바닥에 쏟아졌다. 갓 들어온 신참을 골려줄 셈으로 선배들은 신참 조리사 이금희를 몰아 세웠다. 지금처럼 여자 조리사가 많지 않았던 시절, 선배들은 두 달이면 그만 두겠지하며 그를 시험대에 올렸다. 느닷없이 상사의 출장이 생길 때면 막내인 그가 늘 짐꾼 노릇을 했다. 밤에 퇴근 후 근처에서 선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날을 새고, 새벽 5시부터 밤10시까지 출장길에 올라 굳은 일을 도맡아했다.
“사람들은 제가 오래 못 버티고 주방에서 나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꽃게 사건이 있을 때도 울상으로 게를 잡으러 다녔는데... 글쎄, 그때는 게들이 꿈속에까지 나타나 집게발을 들고 저를 쫓아다닐 정도였다니까요.”


주방이라는 치열한 전쟁터
조리과를 졸업하고 한식으로 명성이 높던 롯데호텔에 취업했다. 사실, 주방에 발을 들여놓기 전엔 주방이라는 곳이 이리도 치열한 곳인지, 조리사가 힘든 직업인 줄 미처 몰랐다. 일의 강도는 둘째 치더라도 거친 찬모(한식 주방에서 전처리 작업이나 찬거리를 준비하며 조리보조 역할을 하는 조리사를 일컬어 부르는 말)들사이에서 머리채 잡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고, 또 하룻밤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처럼 지내는 상황에 어리둥절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2년 만 버티다가 결혼하면 그만둘 생각으로 적금도 2년 만기로 들었을 정도다. 그런 그녀가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것은 모두 사람들의 응원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분들은 저를 딸처럼 살갑게 대해주셨어요. 힘들면 다독여주고 아플 때 먹여주고 모자라는 것은 채워주며 “금희야 꼭 네가 있어야 해”, “임신 하더라도 그만두지 말고 함께 가자”며 다독여주고 제 빈 곳을 채워 주셨어요. 출산 휴가로 공석이 된 수개월 동안도 그분들이 제 역할까지 커버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요. 팀워크는 어려운 순간을 버티게 해주는 강력한 원동력입니다.”

조리장님도 힘들 때가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주방에서 조리사 한 명이 물어왔다. 무심코 “아이 힘들어”란 말이 입에서 흘러나온 것을 주워들었나 보다. 언제나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려했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했었다. 롤 모델로서 환상을 쫏던 그들에게 이 셰프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던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훌륭한 요리사가 되고 싶어 주방에 들어왔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고비 고비를 넘겨 성장하는 후배들을 보며 힘들어도 주저앉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메이필드 호텔 한식주방에는 7~8년 된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오픈 멤버도 있을 정도니까요. 한 후배는 제 밑에서 6년 이상 함께 일했는데, 반항도 하고 싸워가며 속을 많이 썩혔지요. 그 녀석이 지금은 지방의 한 리조트에 있어요. 가끔 그곳의 특산물을 보내주곤 하는데 어느 날 전화해서는 “저 같은 꼴통을 어떻게 데리고 있었어요?”라고 묻더라고요. 후배가 생기고 자신도 누군가를 이끌어야 할 위치에 서 보니 이해가 되는 거죠. 백번 말해도 소용없잖아요. 그 자리에 서 봐야 비로소 아 그때 이래서 그랬구나! 깨달아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언제쯤 끝내놓고 편하게 밥 먹을 수 있을까?”
롯데호텔에서 근무할 때 남편을 만나 사내 결혼을 했다. 하지만 당시 외환위기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둘 중 하나는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육아에 전념하기로 마음먹고 집에 앉아 있는데, 결국은 호텔 주방에 다시 서게 되더라. 봉래헌 오픈시기에 맞춰 메이필드 호텔에 부임해 편하게 앉아 밥 먹을겨를도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면서도 마음은 늘 즐거웠다.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는 찬모 한 분은 14년간 함께 호흡을 맞춰온 터라 서로 속을 훤히 꿰고 있다. 주방에서 의견 다툼이 있을 때면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퇴근 후 술 한 잔 기울이며 훌훌 털어내고 나면 그만이다. 마치 처음 주방에 들어왔을 때 치열했던 주방을 보듯 지금이 꼭 그 상황 아닌가.

천대받았던 한식 재조명, 전통을 잃지 않고 긴 호흡해야
이제 본격적으로 한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호텔에서 한식은 힘이 없다. 동양식에서조차 한식의 비중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결국우후죽순 호텔에서 한식당이 퇴출되던 시기가 있었
다. 최근 들어 한식이 다시 트렌드의 중심에서 다양한 변화를 입고 있지만 그 중 핵심 가치는 전통이 돼야한다. 또한 한식은 길게 내다보고 특색을 가져가야 한다. 많은 셰프들이 한식을 세련되게 바꾸고 현대화 하지만 한식의 전통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한식의 트렌드에 힘입어 왜 굳이 전통 한식을 고집하는지, 모던 한식으로 바꾸지 않는지 묻지만 전통한식을 고수하는 것이 이 셰프가 추구하는 요리의 가치관이다. 소소하게 음식의 담음새는 바뀔 수 있지만 맛의 변형은 시도하지 않는다. 이것이 트렌드를 추구하는 그들과 차별된다. 그런 면에서 메이필드 호텔은 오너의 한식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의사소통과 교감이 잘 이뤄진다. 오너와 직원, 셰프와의 교감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기반이 유지돼 메이필드 호텔만의 전통한식이 깊이 뿌리내릴 수 있었다.
“가령 외국에서 온 손님이 호텔에 왔는데 한식당이 없다면 무슨 음식을 대접하겠어요? 그들은 우리의 것을 경험하고 싶어 할 겁니다. 하지만 호텔에서 한식당은 수익성만 따져서는 운영될 수 없어요. 한식이 인건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은 인정해줘야 하지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식당을 운영하던 호텔에 혜택을 주던 것처럼 재정비된 육성책도 필요해요. 호텔에서 한식당이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한식=손맛, 맛을 익혀라
한식은 손맛이라고 한다. 한식의 기본적인 레시피는 있어야 하지만 맛의 미묘한 차이는 어쩔 수 없다. 한식은 유난히 손을 많이 사용해 만드는 음식이므로 직접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 수시로 먹어보지 않고는 제대로 맛을 낼 수 없다. 전통적인 맛을 기준으로 삼아야 기본기를 갖춘 셈이 된다. 후배들에게 “스스로 해봐라, 맛을 익혀라”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기본을 갖추고 여기에 개인의 창의력을 더해 요리를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의 가정식은 한식, 즉 엄마의 손맛이 깃든 음식이다. 지치고 힘들 때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가 위안이 되듯, 어릴 적부터 각인된 맛이 성인이 되어서도 맛의 기준이 되는 것처럼, 맛의 기준이 주는 힘은 강력하다.

깊어가는 주방에서의 시간, 요리사의 자세
주방에서 요리사는 행동이 민첩해야 하므로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된다. 일을 쳐낸다는 표현에 가까울 만큼 주방의 생리는 늘 그렇다. 그래서 이금희 셰프는 항상 ‘왜?’라는 질문으로 브레이크를 건다. 일머리를 가르치는 혹독한 시어머니 노릇을 자초하며 조리사들을 훈련시키는 이유는 머릿속에 일의 큰 그림을 그리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요즘은 호텔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며 인건비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메인키친 등으로 역할의 이원화를 꾀하지만 조리사의 역량을 키우는 관점에서 볼 때 이는 결국 옳은 방향이 아니라는 게 이 셰프의 생각이다. 일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초기 호텔 한식당에서 정통한식을 배운 것은 그의 큰 자산이 됐다.
“메인 키친 등에서 올려준 기본 재료를 바탕으로 한식 키친에서 터치를 가미하는 것은 일의 부담을 줄여주긴 하지만 호텔을 떠나면 일의 전체를 배운 것이 아니므로 미완성에 그치고 말아요. 결국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거죠. 저도 처음 주방에 들어왔을 때 일을 몸으로 먼저 익혔어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내가 지금 왜 이 일을 먼저 해야 하는지, 왜 이런 조리 과정이 필요한지, 습관적으로 몸에 배어버린 일에 질문을 하고 답을 찾도록 하는 게 스스로 성장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니까요.”

셰프 이금희가 여자 후배들에게..
목표를 삼아 최선의 힘을 쏟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맹목적으로는 절대 셰프로서 성공할 수도 주방에서 버텨낼 수도 없다. 일단 목표가 분명하다면 포기하지 않은 것이 그 다음이다. 주방에서 여자는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은 낡은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한다. 부당함에 당당히 맞서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능력을 갖춘 여자들이 주방에서 충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다만 임신과 출산이라는 높은 장벽을 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경력 단절 없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많은 환경과 제도가 뒤따라야 한다.

셰프의 애장품


#. 호텔 롯데에서 근무하던 시절, 우연한 기회에 당시 송용덕 사장의 메뉴를 담당했던 것이 계기가 돼 전담 셰프가 됐다. 사진은 당시 선보였던 메뉴를 구성한 것.



#. Chef’s Collection.
이명박 정권의 핵심 사업이었던 한식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만찬을 하며 수여받은 상패와 기념 찻잔.

Chef. 이금희
국내 특1급 호텔 중 유일한 한국인 여성 조리장
20여년 간 호텔 한식당에서 한식의 맥을 이어옴
(서울, 경기지역을 표방한 음식 스타일)
경희호텔경영전문대 조리과 입학(1986)
경희대학교 외식경영학과 2011년 졸업(2007년 입학)
경희대학교 관광대학원 조리외식학과 석사 과정(2010년 입학)
2010. 근로자의 날 국무총리 표창 수상
        한식스타셰프과정(경희대) 이수 2010년
1987. 롯데 호텔 한식당 ‘무궁화’ 입사
1988. 롯데 호텔 한정식당 ‘포석정’ 이동
1999. 롯데 호텔 퇴사
2002~현. 메이필드호텔 전통 한정식당 ‘봉래헌’ 조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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