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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8 (월)

호텔&리조트

[HR Versus] 호텔 vs 모텔, 각자도생(各自圖生)에서 마주하다

다른 길을 걷던 호텔과 모텔이 같은 노선에서 마주쳤다. 호텔이지만 모텔 같은, 모텔이지만 호텔 같은 특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호텔이 어렵게만 느껴지고 모텔은 꺼림칙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으며, 호텔은 고급이고 모텔은 저급이라는 공식도 깨졌다. 태생부터 너무 달랐던 두 숙박업이 교집합을 갖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 봤다.



개항과 동시에 쓰인 국내 호텔의 역사
국내 최초의 호텔은 1888년 인천에 들어선 대불호텔로 알려져 있다. 수도인 경성(서울)이 아니라 인천에 세워진 까닭은 인천항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던 창구였기 때문이다. 인천항을 통해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목적지는 대개 경성이었는데, 아직 철도가 놓이기도 전이었고 교통이 마땅치 않아 인천에서 하루 이상을 묵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어서 국내 두 번째 호텔인 스튜어드 호텔이 인천에 들어섰으며 1899년, 경인 철도 개통을 시작으로 교통이 원활해지면서 경성 곳곳에 호텔이 생기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경성 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부터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로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경성조선호텔 등을 거쳐 1929년 최초의 상용호텔인 반도호텔이 등장했다. 해방 이후 6·25 전쟁을 겪으면서 주춤했던 호텔 산업은 휴전 이후 관광 산업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며 다시 급물살을 타게 됐다. 관광을 주관하는 정부부처가 생겼으며 민영 호텔들이 늘어났다. 우수한 시설을 갖춘 호텔을 관광호텔로 지정하고 등급화 제도를 시행한 게 1960~70년대의 일이다. 1970년대부터 외국인 관광객이 급격히 늘어나며 한국 관광 산업이 본격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호텔 산업 역시 덩달아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을 이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불호텔 자리의 중화루(우측 건물)>


‘한국형 모텔’의 등장
모텔은 본래 자동차 여행객을 뜻하는 ‘Motorist’와 숙박업소인 ‘호텔(Hotel)’의 합성어다. 도시 간 거리가 상당한 미국에서, 자동차를 이용해 도시를 이동하는 여행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려 고속도로변에 세운 숙박업소가 바로 모텔이다. 가로로 긴 2층 건물 앞에 바로 주차 공간이 있는 형태가 일반적인데, 가격대에 따라 주유소나 수영장이 딸려있는 등 편의시설을 극대화한 곳도 있다. 용어 그대로 차와 여행객의 쉼터인 셈이다.
1990년대, 국내에도 모텔이라는 이름을 단 숙박업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차시설을 갖추기는 했지만 원래의 모텔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시 외곽이나 도로변이 아니라 도심에 주로 위치한 한국의 모텔은 현대화된 여관에 가까웠다. 여관의 밋밋한 온돌방이 비교적 세련된 인테리어의 침대 객실로 진화한 형태인 것이다. 모텔은 여관의 대안, 즉 고전적인 여관보다 낫고 호텔에 못 미치는 중저급 숙박업소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모텔이 숙박업소로의 지위가 낮아진 결정적 이유는 남녀의 욕구 해소를 위한 ‘퇴폐적 공간’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모텔은 숙박보다 정해진 시간만 방을 빌려 쓰는 대실 서비스 위주로 운영됐다. 모텔이 여관으로 불렸던 시절에는 안 그랬겠냐마는, 1980년대 중후반 ‘88 서울 올림픽 전후로 성 담론이 서서히 양지로 올라오며 모텔이라는 단어에 에로스적 이미지가 공공연히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이후 모텔은 ‘러브 호텔’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안마시술소나 유흥업소와 별다를 것 없는 취급을 받아 왔다. 이용객들은 이용 여부를 쉬쉬했다. 그럼에도 이용자와 모텔 수는 늘어만 갔다. 주택가 주변까지 영업이 성행해 모텔이 풍기를 문란하게 한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모텔은 언급 자체가 껄끄러운 소재로, 공적인 자리에서는 암묵적인 금기어가 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모텔>


모텔의 ‘호텔’ 변신은 무죄? 유죄?
1999년, 공중위생법이 폐지되고 공중위생관리법이 적용됐다. 폐지 전 공중위생법은 숙박업을 호텔업·여관업·여인숙업으로 세분화했지만 개정된 공중위생관리법은 숙박용역을 제공하는 모든 영업장을 단순 숙박업으로 통합했다. 각 숙박업종에 대한 시설 및 설비기준도 삭제돼 사실상 모텔이 호텔이라고 이름을 바꿔 단 채 운영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뒷골목 그림자처럼 존재했던 모텔들은 서서히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과거 여관에서 모텔로 변신을 시도했듯, 호텔 타이틀을 붙여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다.
이로 인해 관광객들이 인터넷 예약 사이트에 올라온 업장 이름과 대략적인 사진만 보고 모텔을 관광호텔로 오인해 예약하게 되거나 시설과 서비스 수준이 현저히 낮음에도 관광호텔에 준하는 요금을 요구하며 과다한 부당이득을 챙기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애꿎은 숙박 이용객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자유여행으로 국내에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더 속기 쉽다. 대개 FIT 방문객들은 OTA 등 호텔예약사이트를 통해 숙박업소를 찾는데, 한국 숙박업소 유형에 대해 무지한 이들은 외관만으로 이름만 호텔인 곳인지 아닌지를 내국인만큼 구별해 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한 번의 불쾌한 경험으로 국내 모든 호텔 서비스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심어 줄 가능성도 생겼다.


가족끼리도 이용하는 모텔, 호텔과의 거리 좁혀
서울시 기준(2015), 전체 숙박업소 3313곳 중 모텔이 차지하는 비율은 2455곳으로 74%에 달한다. 호텔 이름을 단 저급 모텔의 부정적인 면을 살펴봤지만 모든 모텔이 호텔 명칭을 악용하거나 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과거 음성적이고 퇴폐적이었던 이미지를 벗고 친구, 연인,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구성한 모텔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텔들은 본래 호텔이 지향하는 가치였던 ‘휴양과 공연, 오락, 식음 등 고객을 위한 편의시설 보유’ 조건을 충족시키기도 한다. 불온한 장소로만 여겨졌던 모텔에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글램핑과 수영을 즐기고 내부에 구비된 홈시어터로 영화를 감상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꿈같은 소리가 아니라 이미 성업 중인 모텔들의 이야기다. 비즈니스호텔 못지않은 고급 모텔은 물론이고 오락 기능을 강화한 이색 테마 모텔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천장이 열려 누운 채로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곳, 수영장이 있는 곳, 콘솔 게임기가 설치된 곳들은 물론 열 명 이상의 인원이 단체로 놀 수 있는 파티 룸을 갖춘 모텔도 많다. 이런 시설이 없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모텔에 IPTV와 PC정도는 설치돼 있어 PC와 TV를 연동해 영화를 보거나 IPTV로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내 집, 내 방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모텔들은 주 이용객인 20~30대 젊은 세대를 겨냥한 깔끔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선보이며 숙박예약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다양한 혜택을 주기도 한다. 젊은 감각을 지닌 모텔 및 숙박업소 관련 스타트업 기업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모텔을 젊은이들의 문화공간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모텔 숙박예약업체 ‘야놀자’의 이수진 대표는 모텔을 ‘자는 곳이 아니라 노는 곳’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친구든 연인이든 누구나 제 방에서처럼 편하게 쉬거나 놀 공간이 필요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잠깐 쉬었다 갈까?”라는 말은 더 이상 능글맞고 음흉한 의도만을 담지 않는다. 누구나 자연스레 모텔을 이용할 수 있는 배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의 오명을 떨치기 위해 모텔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며 점점 호텔과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호텔야자 신림점>


같은 듯 전혀 다른 호텔과 모텔
호텔과 모텔 경계가 좁혀진 만큼 전보다 두 숙박업소 간 차이를 파악하기 더 어려워졌다. 호텔보다 세련된 디자인을 채택한 모텔 건물이 많아져 예전처럼 외관만으로 구별해 내기는 힘들다. 호텔과 모텔의 차이를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우선 호텔의 구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대중이 인식하는 호텔은 관광호텔과 일반호텔, 그리고 호텔 명칭을 붙인 모텔(여관업) 정도다. 보통 호텔과 모텔을 비교할 때, 여기서의 호텔이란 친절한 서비스, 널찍한 로비, 양질의 식음업장을 갖춘 관광호텔을 말하며 모텔은 여인숙을 제외한 일반호텔, 여관업종을 통칭한다.
두 번째는 업장 운영 요건과 관할부처가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호텔 및 모텔은 보건복지부의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관리되지만 관광호텔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정한 관광진흥법의 영향을 받는다. 관광진흥법상 관광호텔업에 해당되는 지위를 얻으려면 여러 까다로운 조건 충족이 필요하다. 관광호텔은 운영 목적이 관광객에게 적절한 서비스와 숙박, 부대시설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원만하게 응대하기 위한 인력과 서비스 체제가 있어야 하며 욕실이나 샤워시설을 갖춘 객실이 30실 이상이어야 한다. 이외에도 로비의 유무, 복도와 객실 간격 등 충족시켜야 할 조건이 다양하고 등급평가기준에 따른 등급(1~5성)도 부여된다. 모텔은 이 모든 조건에서 자유롭다.
마지막으로 관광호텔은 관련법상 대실 운영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호텔과 모텔 사이에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다. 대실은 고객 회전율이 좋아 공실률을 줄여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과거 모텔, 러브호텔의 대실영업이 지녔던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해 관광호텔은 대실 영업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앞서 나열한 모든 정보를 잊어버려도 대실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만 확인해 보면 내가 묵을 곳이 호텔인지 모텔인지 가늠할 수 있다.


호텔에서 대실을? 모텔 따라가는 호텔
관광호텔은 대실 영업을 할 수 없다지만, 운영이 어려워진 호텔들이 암암리에 대실 영업을 하다 적발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지금도 모처에서는 호텔 대실운영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하니, 모텔만 호텔을 좇아가는 게 아니라 호텔 역시 모텔을 좇는 형국이 됐다. 외국에서는 데이 유즈(Day use)라는 형태로 숙박 없이 호텔을 일정 시간만 이용하게 만든 서비스들이 흔히 제공되고 있다. 국내 대실 영업과 다른 점은 단순히 객실만 대여하는 게 아니라 수영장이나 식음업장 등 호텔이 갖춘 부대시설 이용과 연계해 제공한다는 점이다. 국내에도 데이 유즈 패키지를 구성해 판매한 사례가 있다. 지난 2015년 그랜드 하얏트 서울과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이 선보인 ‘선데이 겟어웨이’ 패키지와 ‘대즐링 시에스타’ 패키지다. 두 패키지 모두 당일 중 6~8시간동안 객실 이용과 식음업장, 부대시설을 연계해 제공하는 상품이었다.
숙박 개념을 뺀 대여 형식 상품이 국내에 처음 등장하자 관광호텔의 대실 운영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도마에 올랐다. “대실 운영은 불황에 빠진 호텔을 살리기 위함은 물론이고 친숙한 호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입장과 “상대적으로 자본이 많고 규모가 큰 관광호텔이 대실 운영을 시작하면 일반숙박업 운영에 위협이 되고 영역 침범”이라는 주장이 대립했다. 관광호텔 관계자들은 대실 영업이 모텔 영역을 무작정 침범한 게 아니라고 여긴다. 현재 국내 방문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절반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은 대개 저가 숙박업소를 선호한다. 관광호텔이 품어야 할 외국인 관광객 중 일부를 모텔이 흡수하는 구조가 됐기 때문에, 호텔도 내국인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어렵고 딱딱한 이미지를 벗고 고객에게 캐주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상품 구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점 공유해 시너지 발휘해야
호텔과 모텔은 지금껏 전혀 다른 목적과 타깃을 가지고 운영해 왔다. 언제부턴가 하나둘씩 교집합을 갖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꽤 많은 부분을 공유하게 됐다. 혹자는 최근 호텔과 모텔의 운영 양상을 “관광호텔은 덩치가 크지만 걸음이 무겁고, 모텔업체는 왜소해도 경쾌하게 치고 나간다.”고 표현했다. 호텔은 엄숙함에서 친근함으로, 모텔은 저급함에서 편안함으로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있다. 관할 부처도 다르고 여러 현실적인 사항만 따져 봐도 ‘호텔 = 모텔’ 등식이 성립되긴 어렵다. 관광객 유치 문제와 대실 영업 등 형평성 논리에 따른 ‘밥그릇 문제’도 앞으로 더 불거질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운영 목적과 출발 지점이 다를 뿐 호텔과 모텔이 점점 비슷해져 가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두 산업의 지향점이 친근함과 편안함으로 비슷해졌고, 숙박업이라는 큰 공분모를 가진 만큼 서로 장점을 차용하며 상생의 길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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