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이다. 꽃이 만개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따뜻해진 날씨를 생각하면 덩달아 마음도 따스해지지만, 한편으로는 건조해진 날씨 탓에 화재가 생기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호텔 또한 불특정 다수가 숙박하는 시설이니 만큼 이러한 화재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 지난 2월 논현동에 위치한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15층 객실에서 시작된 불로 총 10명의 투숙객이 대피했으며,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2명이 연기를 들이마시는 결과를 낳았다. 더불어 3월에는 제주도에 위치한 모 호텔에서 화재가 번졌다. 원인은 옥상에 위치한 냉각탑의 과열이었다. 다행히 화재는 진압됐고, 연기가 객실로 내려오지 않아 연기를 흡입한 투숙객은 없었지만, 제주 시내에 연기가 깔리면서 주민들이 피해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화재의 최우선은 예방과 대피다. 또한 이것들이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호텔의 소방설비를 잘 갖춰놓은 상태여야 한다. 현재 호텔에서는 화재예방 및 소방시설의 설비를 어떻게 해내고 있으며, 또 화재에 ‘잘’ 대처하려면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본 지면에서는 피난과 대피라는 말이 혼용돼 있으나, 일반적으로 소방 관계자들은 ‘피난’ 이라는 단어를 채택하고 있다.
100번 말해도 모자란 소방설비의 중요성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소방설비란 ‘소화약제를 사용해 자동 또 는 수동의 방법으로 방호 대상물에 설치해 화재 확산을 막거나 억제하는 장치’다. 이러한 소방설비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소방시설이 알맞게 갖춰져 있어야 한다. ‘소방시설’이라고 하면 아마도 소화기나 스프링 클러와 같은 ‘소방용품’을 떠올리게 될 테지만,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소방시설은 ‘소화설비, 경보 설비, 피난구조설비, 소화용수설비, 그밖에 소화활동설비’를 뜻한다. 한편 호텔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곳으로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 에 관한 특별법」에 영향을 받는다. 피난시설 및 방화시설의 유지가 되고 있어야 하며, 직원을 대상으로 한 화재교육, 화재배상책임보험 가입 촉진 및 관리 등 소방설비 외에도 다양한 화재예방 및 대피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러한 기준들은 언제 생겨났을까? 동아대학교 경찰소방학과 임옥근 교수(이하 임 교수)는 “1977년 소방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불특정 다 수인이 이용하는 숙박시설의 실내장식물에는 화재발생 시 확산 지연 및 점화가 쉽게 되지 않도록 방염 처리된 물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호텔은 소방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특정소방물’에 해당하며, 호텔은 호스피탈리티 산업의 정수다. 진정한 서비스는 고객의 안전한 경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호텔의 안전 관리 중 많은 사상자를 낼 수 있는 화재 관리를 위해 소방 시설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직원에게 시설물을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교육이 요구되고 있다.
예방뿐만 아니라 제대로 피난할 수 있는 피난구조설비도 완벽히 갖춰져 있어야 한다. 소방용품 전문기업 주식회사 더정진의 정윤교 대표이사(이 하 정 대표)는 “화재에서는 예방과 진압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소방 관계자의 몫”이라고 설명하면서 “화재 상황이 발생하면 고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대피다. 정부에서도 소방안전대책의 일환으로 ‘불나면 대피 먼저’라는 슬로건을 걸고 정책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 어 임 교수 “화재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귀소본능으로 인해 익숙한 경로 를 통해 대피하려는 성향이 있다. 주거시설에서 화재가 난다면 빠르게 판단 후 피난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루트로 대피할 수 있지만 처음 방문한 건물이라면 들어왔던 경로 외에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라고 이야기하면서 “따라서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곳에서는 화재사고 발생 시 재빨리 피난할 수 있도록 매우 직관적인 구조설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소방설비는 소방시설이 잘 갖춰져야 하면서, 주기 적 점검과 동시에 직원 대상의 화재예방 교육을 공교히 하는 것에도 의의가 있다. 더불어 신속한 피난을 할 수 있는 피난구조설비 또한 유기적으로 구성돼 있어야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적절하게 대비할 수 있어진다.
화재에 대한 부족한 관심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화재 안전의 중요성, 더 나아가 소방설비의 중요성은 언제부터 대두됐을까. 1971년, 명동에 위치한 대연각 호텔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총 사망자 166명, 부상자 68명, 실종 25명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 1층 커피숍에 있는 LP가스가 폭발이 원인으로 지목됐으며, 더불어 건물에는 비상계단도 부족했고, 옥상 출입문이 닫혀 있어 제대로 대피할 수조차 없던 것이 치명적이었다. LP가스의 폭발과 더불어 피난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2017년 감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 부산 지역 건축물 10개 중 6개의 소방설비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축물 440개에 대해 소방시설 완공검사 및 감리의 적정성을 검토한 결과, 61%인 268개 건축물의 소방설비 일부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것. 이를 통해 소방설비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 임 교수는 “이후 1973년부터 고층 건축물에서 화재 위험성 높은 물질의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 실내장식물에 방염성능이 부착된 것을 사용하도록 소방법이 개정됐다.” 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정 대표는 “우리나라는 소방에 대 체적으로 관심이 부족한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완강기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찾아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호텔 등 어딘가를 방문하면 꼭 한 번씩 계단을 이용해 볼 것을 추천한다. 낯선 장소에서 불이 나더라도 비상계단을 기억에 남겨둔다면 보다 빠르게 대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이렇듯 소방설비를 제대로 갖추는 것과 주기적인 점검은 화재를 예 방하고 대피를 함에 있어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일이다. 특히 지난 1월에는 윤상기 강원도소방본부장과 서영교 국회행정안전위원장 등이 참여한 정책 회의에서, 신속한 화재 진압을 위해 공사 중 에도 연결 수송관을 위시한 소방용수설비 및 소방활동설비를 우선적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소방시설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이야기가 나와 그 중요성을 더한다. 이렇듯 일선에서는 소방설비에 관한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방설비는 물론이고 화재에도 큰 관심이 없다. 정 대표는 “실제로 우리나라는 소방설비 및 관련 용품들의 산업이 크게 미국과 일본에 비해 크게 뒤쳐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호텔 또한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시설로 소방설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소화기나 휴대용비상조명 등은 다소 보이지 않는 곳에 보관돼 있는 형국이다.
설비와 교육 모두 중요해
호텔의 객실 내에는 소화설비에 해당하는 소화기, 경보설비에 해당하는 감지기, 비상벨, 시각경보기 등이 있으며 피난구조설비에 는 완강기, 구조대, 그리고 휴대용 비상조명등이 있다. 추가적으로 호텔의 실내장식물에는 방염성능기준에 부합하는 방염대상물품을 사용해야 한다. 방염대상물품은 실내장식 등의 목적으로 설치 또는 부착하는 물품으로서 방염 커튼, 방염 벽지, 방염 블라인드, 카 펫, 합판이나 목재 등을 뜻한다. 조선호텔앤리조트 안전관리팀 최재욱 파트장(이하 최 파트장)은 “조선호텔앤리조트는 법적 규정에 적합한 공기호흡기, 방열복 및 방화복, 인명구조기구 보관함 등 인 명구조기구가 갖춰져 있으며, 소화기, 자동소화장치 등의 소화설비, 고객 및 직원 대피를 위한 피난 설비 등을 구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특히 많은 고객 이 숙박을 하고 있는 호텔 의 특성상 화재 발생을 신속히 파악하고 화재 상황 을 전파하기 위한 자동화재 탐지설비가 중요하다. 신속한 화재 발생 인지와 호텔 소방대, 위기대응팀이 출동해 상황을 빠르게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자동화재탐지설비는 화재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열이나 연기를 자동적으로 검출하는 역할을 하며, 보통은 천장이나 벽면에 부착 돼 있다. 크게 수신기(뇌), 감지기(감각기관), 발신기, 경종(목소리) 등으로 구성되며, 실내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감지기가 온도의 변화나 연기를 감지해 수신기로 신호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수신기가 신호를 보내면 요란한 벨소리가 울리는 것. 화재가 나면 고객들은 먼저 이 요란한 벨소리 때문에 불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시설 중에서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시설의 설비뿐만 아니라 호텔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화재 교육도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도 관계자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최 파트장은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소그룹으로 나눠 소방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심폐소생술, 대피 방법 및 화재 시 맡을 업무를 알려주고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현장에서 확인하기도 한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올해는 분기 별로 실시해 화재위험의 안전성을 알리고 고객들에게 보 다 안전한 공간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방시설물을 들여놓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까지 고려하는 호텔들도 있다. 호텔은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니 만큼, 객실과 어우러지는 디자인도 중요한 것. 그중에서도 특히 소화기의 경우 다양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플레이스 캠프 제주에서는 브랜딩 컴퍼니 퍼셉션과 디자인 소화기를 제작하는 마커스랩의 합작으로 그래피티를 래핑한 소화기를 선보였다. 공연과 플리마켓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뤄지는 다이나믹한 호텔의 정체성에 맞는 제품인 것. 마찬가지로 호텔 리버사이드 울산에도 모던한 콘셉트인 객실에 맞춰 하얀색 소화기를 들여놨다. 임 교수는 “최근에는 천편일률 적인 색상이나 형태가 아닌 건물 내부 구조, 내장재와 어울리는 수려한 디자인을 가지는 소방용품을 제공하는 추세”라고 설명하면서 “사용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 된다.”고 덧붙였다.
조선호텔앤리조트 안전관리팀이 맡고 있는 소방업무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조선호텔앤리조트 전 사업장의 안전, 소방, 시설, 위생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지속적인 안전점검 뿐만 아니라 그때그때 생겨나는 문제점을 해결해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직원들과 고객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각 호텔의 소방 시설물 설비 및 주기적인 점검을 통해 관리하고 있으며, 소방교육훈련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자료 배포 및 훈련 일정을 공지하는 등 화재위험에 대비하는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소방설비 점검 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소방시설물이 상시 작동할 수 있도록 주기적인 테스트를 거치는 것이다. 시설은 노후화되기 쉽다. 원활한 설비가 이뤄지기 위해서 조선호텔앤리조트에서는 분기 별로 시설에 일부러 가스를 뿌려 테스트를 실시한다. 위험을 감지하는 센서가 잘 돌아가는지,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또한 1년에 2~3번은 안전관리팀의 감독 하에 소방전문 업체를 불러 전체적인 소방시설을 살펴보고 설비가 제대로 갖춰졌는지 체크하고 있다. 평상시 직원들의 소방교육 또한 놓칠 수 없다. 화재가 발생하면 직원들이 당황하지 않고 소화기, 소화전 등을 이용해 화재를 진압하고 고객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함이다. 대피 및 안전 교육을 통해 각 팀의 지시를 담당하게 될 팀장과 각 구성원들이 화재가 일어났을 시 행동해야 하는 요령을 분담해준다. 더불어 화재예방에 관련한 비디오를 호텔 자체적으로 제작해 직원들에게 화재예방의 위험성을 알릴 계획이다.
다른 업장과 달리 호텔 소방설비에 있어 특별히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고객이 24시간 존재하는 호텔업의 특성상 야간에는 취침 중인 고객이 많다. 때문에 야간에 화재가 발생하게 된다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동화재탐지설비에 해당하는 감지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초동 대처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물질에 취약해 관리를 잘못하면 오작동이 쉽게 일어나 사전에 이물질을 제거하고 제대로 센서 감지가 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소방 및 안전을 담당하는 전문가로서 호텔의 소방설비 및 관리에 있어 꼭 필요한 부분을 설명해 달라.
호텔은 고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다중이용업소로 법적 기준에 맞춰 고객과 직원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소방시설에 대한 많은 투자와 관심이 요구되며, 소방에 관한 직원들의 많은 관심과 협조가 필요하다. 앞서 말했다시피 시설은 제대로 관리를 하더라도 수명에는 한계가 있고, 전선이 고장나거나 감도가 약해서 자칫 큰 사고를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방시설는 다른 인테리어들처럼 바꾸거나 보완을 해도 눈에 잘 보이는 시설이 아니기에 다소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덧붙여 호텔은 로케이션 근무로 돌아가는 만큼 근무를 쉬고 있을 때 화재예방 교육에 참여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휴식 중에 교육을 듣는 것이 쉽지 않다. 직원 전체가 소방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제정된 연 1회가 아니라 다회의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앞으로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소방 계획이 궁금하다.
앞으로도 소방시설물 관리 및 소방 교육 훈련에 힘써서 화재가 발생하지 않는데 주력할 것이다. 혹시라도 화재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직원들이 평상시 교육 받은 매뉴얼 대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 화재를 진압하는 데 도움을 주는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한 화재 발생 시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고 고객을 안전하게 대피시켜 아무런 인명 피해 없이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예방뿐만 아니라
피난설비도 반듯하게 세워야해
소방에는 예방 밖에 답이 없다고들 하지만, 반드시 함께 선행돼야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피난에 대한 대책이다. 불이 났다고 가정해 보자. 이미 여러 차례 예방을 했지만 불길은 치솟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피난구조설비’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피난하기 위해 사용하는 설비로서 피난구조, 인명구조기구, 유도등이 이곳에 속 한다. 대표적으로 피난사다리, 구조대, 완강기, 승강식피난기 등이 이에 속하며 고층건물에 해당하는 호텔에서도 이러한 피난구조설비를 갖추고 있다. 특히 피난기구설비에 속하는 피난기구는 소방대 상물의 피난층, 1층, 2층 및 11층 이상인 층을 제외하고는 모든 층에 설치해야 하며, 대표적으로 많이 쓰이는 피난사다리는 화재가 났을 때 사람이 긴급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금속제 사다리를 뜻한다. 완강 기는 몸무게에 따라 자동으로 내려올 수 있는 기구며, 연속적인 사용이 불가한 완강기는 간이완강기라 칭한다. 구조대는 미끄럼틀처럼 생겼고, 피난자가 신속히 내려올 수 있도록 돕는다. 승강식피난기는 고층건물에 화재 발생 시 유용하게 쓰이는데, 엘레베이터처럼 생겨 탑승 후 소방관의 안내를 받아 그대로 내려오면 된다. 정 대표는 “전체 인명피해에서 60% 이상은 피난 중 또는 연기 및 유독가스 흡입에 의해 사상자가 발생한다.”면서 “화재가 발생한 경 우 올바른 방향으로 신속하게 대피하는 ‘피난 골든타임’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예방뿐만 아니라 피난설비에도 최선을 기해야 한다. 실 제로 2020년 강원소방서의 화재통계 분석을 살펴보면, 수면이나 음주상태가 아닌 화재 발생 시 급박한 상황에서의 대처방법 및 피난요령의 미흡으로 인한 사망·부상자가 발생했으며, 그 다음이 음주 후 우발 적인 화재라고 한다. 화재 시 대처방법과 피난요령의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한 것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호텔의 소방
그렇다면 안전을 더할 수 있는 기구를 추가해보는 건 어떨까. 화재대피용 방연마스크를 비치하는 것이다. 경기도에서는 「경기도 화재대피용 방연마스크 비치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대한 조례를 제정해 의료시설, 노유자시설(교육 및 복지 시설군에 속하는 시설) 등에서 연기 및 유독가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권사항’일 뿐 법률이 아니기에 아직은 미진한 상태다. 호텔 또한 조선호텔앤리조트에서는 화재대피용 방연마스크를 구비하고 있지만, 모든 곳에서 이러한 방연마스크를 갖춘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2018년 소방청 국정감사 당시 이진복 의원이 화재 발생 시 유독가스를 막아주는 제연설비가 특정소방대상물에 의무 설치하도 록 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식사에는 무용지물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예방도 예방이지만, 이제는 대피 먼저하고 신고하라고 정부에서도 이야기한다. 소방의 패러다임도 예방과 피난 둘 다 중요해지는 방향으로 조금씩 바뀌어나가는 중”이라고 덧 붙였다. 이미 제연설비가 구비돼 있는데도 그것만으로는 유독가스를 모두 방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는 것이다. 호텔의 안전을 위해 예방에 도움을 주는 기존의 소방설비와 더불어, 방연마스크 등 법 적으로 지정되지는 않았더라도 화재발생 시 피난에 도움을 주는 용품이 있다면 적극 활용해보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혹은 기존에 사용했던 기구의 디자인을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다. 관습적인 디자인을 탈피해 시선을 끌어보는 것. 소방청에서 실시하는 <소방산업 우수 디자인 공모전>은 ‘소방산업의 새로운 도약, K- 소방형 뉴딜을 그리다’라는 주제로 산업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 롭고 창의적인 디자인, 기존 소방용품 특성을 개선할 수 있는 실용적인 디자인을 뽑는 공모전이다. 안전용품은 무조건 예뻐야 도움이 된다는 편견을 깨고 익숙한 디자인을 탈피, 오히려 소방용품 및 시 설에 대한 관심을 끌어보려는 시도로 유추해볼 수 있다. 기술과 사 용자를 연결해 화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실제로 예방을 할 때도, 대피를 할 때도 도움이 된다. ‘원래 있어야 하는 곳’에서 기구를 옮기기도 한다. 실제로 소방청은 ‘2021년 하반기 규제혁신 우수사례’로 피난자 시선에 맞춰 유도등 설치기준이 개선된다는 개정안을 선정했다. 복잡·다양화된 현대 건축물의 내부구조 변화를 반영해 위급상황 시 피난자가 신속하게 피난구를 찾도록 유도등 설 치기준을 변경하게 된 것. 피난 시 유도등을 정면으로 볼 수 있게 추가하는 수직형, 입체형으로 설치하는 등 대피 중에도 유도등이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유튜브에 ‘호캉스’를 검색하는 사람은 많아도 ‘완강기 사용법’을 검색하는 사람은 소방관계자 외에 없는 작금의 인식 변화를 바꿔야한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예방에 도움이 되는 소방설비 점검과 더불어 실제로 화재가 발생 할 시 바로 이용할 수 있는 완강기, 구조대, 피난사다리등 피난구조설비를 제대로 갖추고 교육을 장려해야 한다. 또한 가끔은 새로운 디자인 및 방연마스크 등 다양한 소방설비에 대한 투자를 지원하게 된다면, 더더욱 호텔에 방문하는 고객과 직원의 안전을 지키는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간 으로 한 단계 더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이다.
호텔과 같은 숙박업장의 소방설비 정책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궁금하다.
1958년에 소방법이 제정된 이후, 대형 화재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동일한 원인으로 인한 사고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관계법령이 개정돼 왔다. 1971년 크리스마스에 발생된 대연각 호텔 화재사고에서 가연성 내장재로 인해 화염이 빠르게 확산돼 큰 피해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1973년에는 고층건축물에서 화재 위험성 높은 물질을 제한하기 위해 방염성능이 있는 실내장식물을 사용하도록 소방법이 개정됐다. 그 이후로 소방법은 소방용품의 검정업무 도입, 방염처리 대상의 재지정, 소방설비공사업의 면허제 도입, 소방의 구조업무 명문화, 소방시설 설치와 동반한 다중이용업소의 영업허가, 수용인원에 따라 설치해야 하는 소방시설 기준 도입 등을 위해 24회 개정됐으며, 2004년에는 변화된 소방 환경을 반영한 체계적인 소방안전관리를 위해 소방 기본에 대한 사항, 소방시설의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 소방시설공사업에 관한 사항, 그리고 위험물안전관리에 관한 사항으로 분리해 각각 별도의 법령으로 만들었다. 그 이후에는 피난설비 중 방열복, 공기호흡기 및 인공소생기로 구성된 인명구조기구를 7층 이상의 관광호텔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개정됐다.
최근 소방설비 정책의 시류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일관되고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화재예방과 안전관리에 관한 내용들만을 모아 하나의 법률로 통합한 것이 특징적이다. 초고층이나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이 건축되고 있는 생활환경에 적합하게 소방시설을 설치 및 관리하기 위해 「소방시설 설치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2021년에 제정하고 12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됐다. 소방관서장이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호텔과 같은 특정소방대상물의 근무자들에게 소방훈련 및 교육을 언제든지 실시할 수 있게 됐으며, 일정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소방안전관리업무를 할 수 있게 되는 등 좀 더 전문적인 변화를 이룬 것이다.
호텔에서 소방시설 구비뿐만 아니라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하는 소방 점검 및 전략이 있다면?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모든 건축물에는 그 용도, 규모와 수용인원에 따라 소방시설등이 설치돼 있으며,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건축물 사용승인을 받을 수가 없게 돼 있다. 최근 청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발생한 화재와 2017년에 제천에서 발생한 스포츠센터 화재를 보면 1층이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필로티(벽면이 없이 하중을 견디는 기둥으로만 설치된 개방형 구조)’ 형태로 건축물 구조와 화재가 확산된 형태는 유사하지만, 그 피해규모는 달랐다. 청주 산부인과에서는 화재로 인한 연기 및 불꽃을 차단할 수 있는 방화문이 정상적으로 관리돼 안전하게 피난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따라서 법령에 의거해 설치된 소방시설 등이 항상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유지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일반인들은 피난 시 활용할 수 있는 피난사다리, 구조대, 완강기, 공기호흡기, 휴대용비상조명등과 같은 피난구조설비의 사용법을 숙지해 비상상황 시 적절히 사용할 수 있도록 사전에 사용법과 위치 등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호텔설비 점검 시 유의해야할 사안이 있다면? 그리고 호텔과 같이 다수가 이용하는 상업시설과 같은 경우에 소방설비 점검 시 가장 주안점을 둬야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소방청의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는 총 2604명이며 그 중 약 90%는 건축물이나 구조물에서 발생했다. 건축물이나 구조물에서 발생한 인명피해의 약 50%가 연기, 유독가스 흡입으로 인한 것이었다. 화재가 발생하면 불완전 연소로 인해 유독성 연기가 발생하며 이런 연기는 수평방향으로는 초당 0.5~1m의 속도로 매우 빠르게 퍼져나가 호흡장애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시야를 차단해 피해를 증가시킨다. 호텔과 같이 건물 내부 구조가 익숙하지 않은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시설에서는 피난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피난구조설비, 특히 재실자가 활용할 수 있는 피난사다리, 완강기, 비상조명등, 휴대용비상조명등과 같은 소방용품들을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돼야 한다. 또한 화재 발생 시 유독가스 흡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숙박객들에게 젖은 물수건을 활용해 호흡기를 보호하는 등 피난 방법에 대한 안내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스프링클러나 방염 벽지, 소화기, 휴대용 비상등, 완강기 등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구성품이 있는데, 이외에 특히 호텔에서 갖추면 좋을 법한 소방 시설을 제언한다면?
불특정 다수인이 사용하는 호텔에서는 화재발생 시 오작동 하지 않는 신뢰성이 확보된 제품을 사용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재실자들의 피난과 관련된 소방용품들은 법적인 규정보다 넉넉히 구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다시피 1994년부터는 7층 이상의 관광호텔에는 방열복, 공기호흡기 및 인공소생기로 구성된 인명구조기구를, 2002년부터는 휴대용 비상조명등을 설치하도록 소방법이 개정됐다. 휴대용 비상조명등의 경우 숙박시설의 객실 또는 구획된 실마다 잘 보이는 곳에 1개 이상 설치하도록 돼 있는데, 일반적으로 객실은 2인 이상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법적인 기준에만 맞추기 보다는 호텔에 방문하는 주 고객층의 특성을 반영한 실질적인 피난유도 계획과 이에 따른 피난설비를 구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