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환의 Local Food] 서천에서의 영감을 담은 요리 1

2020.11.30 08:50:00


서천의 발견

2016년으로 기억한다. 새로운 식재료의 탐구가 한창일 때 봄 제철 식재료를 찾는 중 산채나물과 잘 맞는 자연산 대형 도미와 넙치가 필요했다. 모르면 물어보라 했던가? 한국에서 요리를 한 적이 없고 오랜 떠돌이 생활에 딱히 선후배 없이 홀로 다닌 시절이라 당연히 인터넷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마량포구라는 곳을 찾았는데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서해안은 어종이 풍부하고 뻘이 있어 어패류와 해조류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마량포구는 인구가 얼마 안되는 아주 작은 항구지만 봄에는 자연산 넙치와 참돔, 여름에는 농어 등 어마어마한 대어가 잡히는 곳이다.


리서치팀과 서해대교를 건너 한산면과 특화시장 및 소곡주와 모시떡, 모시를 경험했다. 모시는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특산물이지만 직접 가보고 느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량포구로 가는 입구는 광활한 뻘로 펼쳐져 있었고 검은 얼굴로 우리를 반겼다. 도착한 그곳은 작은 어촌마을로 우리나라에 교회가 처음 들어온 곳이라고 해서 배로 만든 기념비가 있었고 그 앞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마량포구에서 반겨준 씨푸드월드의 신경식 대표는 마량포구의 구석구석과 홍원항까지 가이드를 해주며 서천에 대한 애착을 보여줬다.


2019년도 서천

매년 반겨주는 사람과 고맙게도 매 시즌 보내주시는 특산물이 있어 꽤나 자주 들렸던 곳이었는데 그중 작년 여름의 서천은 매우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유튜브 채널 ‘셰프의 언어’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역의 제철식재료를 찾아다니는 모습과 식재료를 공수해온 뒤 류니끄 주방에서 만드는 모습까지 촬영을 한다. 작년 여름의 식재료는 서천의 참소라였다. 참소라를 촬영하기 위해 사전 답사도 다녀왔고 계획도 촬영팀들과 빠듯하게 세웠다. 서천에 있는 뻘밭에 반바지와 장화를 신고 오랜시간 촬영을 했는데 땡볕에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 했으나 잘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촬영팀은 더욱더 힘들었을 것이다. 해가 가장 강할 때 시작해 해가 지는 것까지 완벽하게 맞춰 찍어냈다. 참소라를 찾아 떠나는 과정은 쉽지 않았나보다. 종아리가 시뻘겋게 타서 후끈거려 잠을 자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의 서천은 뜨거운 종아리만큼 잘 익힌 참소라 디시를 류니끄 손님에게 내어 선보이고 있었다.




김의 고장, 서천

서산은 감태, 서천은 김. 서로 자존심이 엄청나다. 서산에 갔을 때는 서천 얘기를 안했다. 서천에서도 서산 얘기를 하지 않았다. 주로 우리가 먹는 말린 김이나 조미 김은 여러 지역 브랜드들이 붙지만 서천 김의 생산량은 엄청나다. 서천 연안 김 양식장은 서면, 비인, 마산, 장항지역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곳에 생산되는 김은 충남 전체 생산량의 약 95%를 차지한다. 자존심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어느 추운 날, 무심코 받은 물김 또는 원초는 초록색의 생물의 형태였다. 살짝 익히면 검은 색으로 변하는데 맛이 기가 막히다. 김을 살짝 익힌 뒤 물기를 짜고 피클에 담가 다져주면 김 피클이 되고 달짝지근한 간장과 졸여주면 김 장아찌가 된다.


일본에서는 김을 간장, 설탕에 졸여 잼처럼 만든, 츠쿠다니를 많이 먹는다. 밥맛 없을 때 버터 한 조각과 비벼먹으면 아주 맛있다.


원초의 신박함은 매년 쓸 수밖에 없는 매력을 뽐낸다.


자색의 새우젓, 자하젓

2020년의 가을, 겨울은 여름 봉화에 이어 서천을 표현하기로 결심한 터라 팀들과 엄청 열심히 정보를 찾아내고 있었다. 서천 15개의 면 중 13개 면에서 나는 식재료들을 검색하고 연락처를 알아냈다. 직접 전화해서 시간과 장소 약속을 했고 1박 2일의 타임라인을 촘촘하게 짰다. 우연히 한 매거진의 에디터와 촬영팀도 함께 가게 됐다. 첫 목적지인 서천특화 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자색의 새우젓을 맛보게 됐는데 기존 새우젓보다 크기가 촘촘하고 껍질이 약했다. 짠맛이 덜하고 감칠맛이 있어 샐러드용으로 좋겠다 싶었다. 문득 근채류인 단호박을 사용해 단짠의 조화의 디시를 떠올렸다. 재작년 강진에 갔을 때 특산물인 토하젓을 먹고 감명 깊었었는데 자하젓도 꽤나 인상에 남았다.


 


한산면 소곡주

한산면은 소곡주의 주생산지다. 한산면에 들어가면 소곡주를 빚는 곳들로 즐비하다. 1500년 역사의 소곡주는 맛이 좋아 계속 마시다 일서서지 못한다해 앉은뱅이 술이라고 한다. 소주에 비해 감칠맛과 밸런스가 좋아 마시기 아주 편하다.




유성희 명장이 만드는 항아리 소곡주를 찾았다. 호리호리한 체구의 명장님과 애기를 나누면서 소탈하면서 술을 빚는 진지한 모습에 장인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항아리 소곡주는 2가지의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16도의 약주와 오크 숙성한 41도의 소곡화주가 있는데 여러 가양주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단맛의 밸런스가 약간의 쓴맛으로 차별성이 있었다. 목 넘김이 좋았고 구엽초를 넣어 쓴맛을 냄으로써 단맛을 감소시켰다. 41도의 화주는 놀랍게도 위스키 향이 났다. 소곡주를 증류시켜서 도수가 높고 가격이 약간 비쌌는데 전통주가 이런 퀄리티를 갖고 있다니 놀라웠다. 이번 류니끄 디시의 페어링에 소곡주를 써야할 확실한 이유가 생겼다.


도토리의 발견

점심을 먹어야했기에 서천의 맛집을 찾아보다 판교의 냉면집이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연히 들리게 된 ‘판교면’은 오랜시간 전에 왕에게 진상하던 면을 만들었던 곳이라고 한다. 


더 깊숙이 들어가 알아보고 싶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역사 속에 묻혀진 것들의 실체를 찾아내기란 매우 어렵다. 서천은 전국 3대 우시장이었고 소를 많이 키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축사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메뉴는 육고기만 서천이 아닌 홍성 한우로 대체했다. 판교면에서 40년 전통의 한 냉면집에서 허기를 채우며 주변을 살피던 중 판교 도토리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판교의 도토리는 전국 공급량의 50%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도토리로 묵과 소곡주를 만드는 공장을 찾아 갔다. 도토리 명인이 만드는 반건조 도토리와 파우더, 소곡주 맛을 보고 서천 메뉴에 써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진귀한 경험이었다.




모시잎

한산은 소곡주도 유명하지만 모시잎도 유명하다. 코로나19 시기에 리서치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간곡히 부탁드리니 모시관의 문을 열어 줬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곳의 공기는 쾌적했으며 한산 모시도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설사의 설명에 따라 모시와 삼베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모시는 삼베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양반들이 입던 것이라고 한다. 깻잎 모양의 모시잎은 뒤쪽 면이 하얗고 잔털이 많았고 쌉싸름하고 질긴 섬유질로 돼있었다. 모시로 삼베도 만들지만 모시송편과 소곡주에도 많이 사용하며 널리 알려진 재료다. 이번 메뉴 중 샐러드에 곁들일 가니시로 파우더를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록의 파도, 쪽파

서천은 15개 면으로 돼있고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면의 경계를 만날 수 있다. 지역 리서치의 묘미는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명상하듯 마음이 편안해지고 깨끗해진다는 점이다. 가끔 서울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긴 명상을 깨곤하는데 셰프는 자본주의 사회에 영양을 공급하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 직업의 양면성을 가진 채 우리는 종천면으로 달리고 있었다. 얼마 전 비인면 산골짜기에서 산나물을 계약재배하는 이들을 만나 생산적 이야기를 나눴으나 계절이 안 맞아 결국 실패하고 돌아왔던 적이 있는데 이곳이 마음의 위로가 될 수 있었다. 종천면 이장님을 만나 당신이 재배하고 있는 도로 길가에 있는 밭을 향했다. 초록색의 쪽파로 물들여진 이곳은 마치 큰 파도를 보는 느낌이었다. 어머어마한 양의 쪽파는 건강히 잘 자라고 있었으며 땅이 마사토라서 물 빠짐이 좋고 안개가 없으며 해풍이 불어 쪽파가 잘 자란다는 설명도 들었다. 서천의 쪽파는 보성, 예산을 비롯해 최대 생산지 중 하나다. 이장님의 자세한 설명으로 샬롯처럼 생긴 씨종자부터 심는 방법 그리고 사모님의 쪽파김치까지 맛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임금님 진상 쌀, 서래야 쌀

서천의 특산품 중 하나인 삼광 벼는 임금님에게 진상할 정도로 질이 좋고 유명하다. 화양면은 서천 최대 쌀 생산지로 바다에서 흘러들어가는 강 옆에 위치해 땅이 비옥하고, 맞은편이 군산이어서 일제 강점기 때 많은 양의 쌀을 수탈당한 곳이었다. 2016년 2년 연속 ‘충남우수브랜드쌀’ 평가대회에서 삼광 벼는 서래야 쌀로 우승했다. 서래야 쌀을 재배 중인 한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직접 논에 가서 벼를 만지고 먹어보기도 했다. 아직 늦여름이어서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지만 하늘하늘 부는 바람이 벼를 춤추게 만들었다. 좋은 날씨와 아름다운 풍경은 모두가 감상에 젖을 만큼 만족하고 있었다. 한국 최초로 중국에 수출한 쌀 생산지인 이곳에서 내심 자부심이 느껴졌다.

 



전어, 꽃게

서면은 마량포구와 홍원항이 있는 작은 어촌마을로 믿기 힘들 정도로 풍부한 황금어장이다. 봄은 참돔, 넙치 여름은 갑오징어, 참소라, 농어 가을은 새우, 꽃게, 전어가 많이 잡힌다. 서천의 바다는 뻘이 많아서인지 생선살이 약간 불투명하고 영양가가 풍부하다고 한다. 어항 가득히 채워진 전어는 쓰지 않을 수 없는 서천의 대표 해산물이었다. 15년 전 도쿄 니시아자부의 한 초밥집에서 전어의 비늘을 긁어내고 내장을 제거하는 어린 류태환이 떠올랐다. 당시 스승님께서는 전어는 소금에 재운 뒤 식초에 절여야 제맛이라고 했다. 전어는 출세어로 그 시기별로 싱코, 고하다, 고노시로라고 한다.




싱코는 엄지손가락만한 크기로 비늘을 제거하고 손질을 하는데 초밥집에서 가장 힘든 작업 중 하나다. 한국에서는 전어를 구워서 먹곤하는데 일본에서는 절대 그렇게 먹지 않는다. 서해안의 숫꽃게는 지금 이시기에 절정이다. 알이 꽉찬 암꽃게에 비해 살이 꽉 차고 단맛이 많이 난다. 샐러드와 소금게장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서해안 꽃게와 중국산 꽃게는 마치 노르웨이와 러시아 바다경계처럼 같은 바다를 공유한다. 게에겐 비자가 없기 때문에 구분 짓기는 매우 애매하다.


꽃게는 껍질이 단단해서 발라 먹기가 까탈스러운 반면 맛은 킹크랩 다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제철 식재료를 권장하는 이유는 제철에 가장 맛있는 상태의 재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는 리서치한 재료로 메뉴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다.


류태환 
류니끄 오너셰프
프로젝트 류니끄 셰프디렉터
일본, 호주, 영국에서 8년간 요리 수행을 하고 2011년부터 류니끄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지방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