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술의 Wine in Art] 와인과 LP음악의 마리아주

2016.08.10 11:06:49


감미롭고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 마음 맞는 이와 함께 한 와인과 정적이 흐르는 곳에서 혼자 마신 와인. 같은 와인을 마셨다고 했을 때 이 두 와인의 맛은 과연 똑같을까? 아마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두 와인의 맛이 결코 똑같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음악이 와인 맛에 영향을 미친다는 학설까지 있으니 말이다. 영국 텔레그래프 보도에 따르면 영국 에든버러 소재 헤리엇 와트대학의 에이드리언 노스 교수팀과 칠레 몬테스(Chile Montes) 와이너리(Winery)의 공동연구로 음악이 와인 맛에 영향을 미친다는 학설을 처음으로 수립했다고 한다.
25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와인을 무료로 마시게 한 뒤 설문을 진행한 결과 사람들은 특정음악을 들었을 때 해당 와인의 품질을 최대 60%까지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 품종 와인은 웅장한 클래식 음악, 샤르도네(Chardonnay) 품종으로 만들어진 와인은 생동감 있고 경쾌한 곡이 나올 때 높은 점수를 얻었으며 음악을 정반대로 들려줬을 경우에는 만족도가 25%가량 떨어지기도 했다. 이 실험의 결과는 음악이 인간의 지각에 영향을 미쳐 와인의 맛을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사례다.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실 때의 감정상태에 따른 호르몬 분비와 입안의 타액분비량, 인체 감각기관의 반응상태에 따라 와인의 맛을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와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잘 맞는 음악을 함께 한다면 더 맛있게 와인을 마실 수 있다.
나의 유일한 취미는 LP음악을 감상하며 와인을 마시는 것이다. 그것도 낭만 있는 LP음악으로. 나는 와인을 마실 때 LP 음악을 듣는다. 개인적으로 음악은 역시 LP로 들어야 제맛이 난다고 생각한다. LP의 지직 거림이 너무나 매력적이고 가지런하게 꽂혀있는 LP판을 보기만 해도 감성이 충만해짐을 느낀다.
1977년 대학시절부터 LP를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어느새 벌써 40여 년 동안 1만 장 이상을 모았다. 요즘도 쉬는 날에는 LP를 구하러 여러 곳을 찾아다닌다. 음악에는 여러 종류의 재즈, 팝, 클래식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들의 아련한 추억이 서려있는 가요 LP판을 많이 수집하는 편이다. LP판을 통해 듣는 음악의 끝에는 여운이 있는데, 이는 커팅녹음을 하는 CD나 MP3로 재생된 음악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맛이기도 하다. CD등은 차갑고 기계음이며 잡음은 없으나 금방 싫증을 느낄 수도 있다.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도 집에서는 턴테이블에 LP로 음악을 감상하곤 했었다. 요즘 사람들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감상하는데 이는 뇌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실험에서도 나와 있다. 1시간 이상 감상했을 경우 반드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들어야 하는 반면, LP는 몇 시간을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LP에서 CD로, CD에서 USB로 점점 작아지고, 편리해지는 추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CD음보다 LP음악을 좋아한다. LP는 하나의 작품이며 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 받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게 되며 목소리가 변하기 마련인데 그 가수의 최고 전성기의 목소리를 간직한 LP, 취입 연도, 그 시절, 그때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것은 LP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매력이다.


아날로그의 감성을 능가하는 디지털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날로그가 주는 편안함과 즐거움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가 깊어질수록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도 깊어진다. 세대의 흐름에 따라 70~80년대는 발라드, 트로트, 고고, 디스코가 유행을 했지만 요즘의 테크노, 힙합, 랩송 등은 사람을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것 같다. 그 만큼 세상의 흐름이 빨라졌고 빠르지 않으면 남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 같다. 70년대의 노래는 가사적인 측면을 보면 얼마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가. 지금은 이러한 가사, 리듬 등을 찾아 볼 수 없다.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돌아가다 보니 우리 사람들도 빠르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세상이 온 것이다. 때로는 느리게, 천천히 살아가는 방법도 필요한 때가 왔다. 현대인들은 바쁘게 살다 보니 그 전에 없던 병들이 생기는 것 같다. 즉 아날로그적 삶이 필요한 것이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느림의 미학이 필요한 것이다. 너무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것은 아닌지, 너무 디지털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자신에게 쉼표를 찍어 줘야하고, 때로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주는 기쁨과 균형 있는 삶을 자연을 벗 삼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와인, LP, 골프 등은 모두 손으로 해야 하는 아날로그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LP음악은 음질에서는 CD보다 떨어지고 편리성에서는 MP3보다 훨씬 불편하다. 그러나 LP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친구의 초대를 받아 과거로 여행하듯 그 시대의 감성으로 들어가게 된다. 난 LP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시절, 그 때로 돌아가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와인 한 잔을 기울이곤 하는데, 이때의 와인 한 잔의 맛은 최고이며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다. 와인의 맛을 높이는 데는 무엇보다도 즐기는 마음이 우선이다. 결국 음악은 와인의 맛을 좋게 할 수 있으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을 때 최고의 와인이 된다. 와인은 즐거움이며 기쁨이다. 와인을 마시는 순간을 즐기고 와인과 함께 듣는 음악, 그리고 와인을 마시면서 나누는 마음을 즐겨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와인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에게 기쁨을 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2년간 운영했던 와인바(와인&아날로그)에서 여러 사람들과 같이 했을 때 그 큰 기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언젠가 다시 오픈해서 그런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웃음)


와인바나 레스토랑에서는 서로의 대화에 귀에 거슬림이 없는 재즈나 보사노바가 다른 음악보다 가장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와인과 음식, 그리고 음악이 있어야 최고라고 볼 수 있으며 음악이 없으면 조용한 절간에서 식사를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진 몬테스 와인, 몬테스의 창립자이자 와인메이커인 아우렐리오 몬테스(Aurelio Montes) 씨는 와인 생산 과정에 이미 음악을 활용한 바 있다. 그의 펭 쉬(Feng Shui) 와인 저장고의 오크통 옆에서 수도사의 합창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이제 몬테스 사는 생산되는 와인의 백 라벨에 추천 음악도 기재할 생각이다. 와인과 음악은 공부하지 말고 즐기고 느끼면  자연적으로 도사(道士)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와인과 음악을 알면 비즈니스에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삶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와인과 음악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와 같은 LP음악에 깃든 추억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와인 한 잔과 함께 LP음악을 들으며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길 권한다. LP음악과 함께라면 가장 행복한 한 잔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재술
서원밸리컨트리클럽 와인엔터테이너
호텔신라와 삼성에버랜드 안양베네스트골프클럽에서 와인소믈리에로 근무했으며 경기대학교 관광전문대학원에서 <계층간 소비태도가 와인구매행동에 미치는 영향 연구>로 관광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중앙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와인소믈리에 1년 과정, 프랑스 보르도 샤토마뇰 와인전문가 과정(Connaisseur)을 수료했다. 2004~2006년 안양베네스트골프클럽 근무 때는 안양베네스트가 18홀임을 감안해 1865와인의 ‘18홀에 65타 치기’ 스토리텔링을 처음으로 만들어서 와인문화를 보급하는데 앞장서기도 했으며, 현재는 서원밸리컨트리클럽에서 와인으로 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와인소믈리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