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교수의 명가의 와인] CASCINA CHICCO

2022.10.16 09:00:17

✽본 글의 외국어 표기는 기고자의 표기에 따릅니다.

 

찬바람이 얇은 가을 옷을 서글프게 만든다. 낮의 기온은 나름 온화하고 그래서 두터운 옷을 입기도 쑥쓰럽고, 그러나 아침, 저녁으로 공기는 차다. 시월은 뭔지 모를, 원인을 알 수 없는 슬픔이 울컥 다가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달이다. 


이런 달에는 그냥 피에몬테로 간다. ‘산자락’을 붙잡고 마음을 달래 본다. 필자의 생일 달은 그런 달이다. 그래서 필자는 피에몬테 와인을 좋아하나보다. 찬바람이 얇은 가을 옷을 서글프게 만든다. 낮의 기온은 나름 온화하고 그래서 두터운 옷을 입기도 쑥쓰럽고, 그러나 아침, 저녁으로 공기는 차다. 시월은 뭔지 모를, 원인을 알 수 없는 슬픔이 울컥 다가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달이다. 이런 달에는 그냥 피에몬테로 간다. ‘산자락’을 붙잡고 마음을 달래 본다. 필자의 생일 달은 그런 달이다. 


그래서 필자는 피에몬테 와인을 좋아하나보다.    

 

 

가을이 깊어가는 피에몬테, 로에로 ROERO


‘산 발치’라는 뜻도, 이름도 정겨운 피에몬테 지방은 이탈리아 북서부 쪽의 프랑스와의 국경 지방이다. 중부의 토스카나 지방과 더불어 와인 품질의 자웅을 겨룰 정도로 유명한 와인 산지 중의 하나로, 이탈리아 전체 75여 개의 와인 DOCG 명칭 중, 17개가 피에몬테 지방에 있다. 독자 여러분이 익히 알고 있는 너무나도 유명한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와인이 피에몬테 대표 와인들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피에몬테 와인 산업의 중심은 피에몬테 중남부 지역을 관통하는 타나로(Tanaro) 강의 우안 남쪽의 랑게(Langhe) 지역으로서, 모든 명성과 품격, 대중의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 타나로 강 건너편의 좌안 북쪽, 로에로(Roero) 지역이 뜨고 있다. 이탈리아 와인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바롤로, 바르바레스코가 있는 랑게 지역은 잘 알지만, 로에로 지역은 잘 모른다. 이는 마치 보르도 와인 애호가가 메독(Médoc) 지역은 알아도 페삭-레오냥(Pessac-Leognan) 지역은 잘 모르는 것과 같다.

 

로에로 지역은 알바 시 북쪽의 일련의 구릉지대를 부르는 명칭인데, 중세 시대에 이 지역을 다스렸던 영주인 로에로 가문의 이름을 땄다. 산과 구릉, 숲과 과수밭, 포도밭이 어우러진 자연 풍광과 역사성을 인정받아 2014년 UNESCO World Heritage Site로 지정됐다. 이 지역에서는 청포도 아르네이스(Arneis)로 만든 화이트 와인과 적포도 네비올로(Nebbiolo)로 만든 레드 와인이 유명하다. 불과 30여 년의 짧은 기간 동안의 변화의 결과, 로에로의 사토질 토양에서 생산되는 이 지역 와인들의 아름다운 특성들이 부각되며 열성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로에로 지역의 카날레(Canale) 마을에 둥지를 틀고, 로에로 와인의 전통성과 현대화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이 달의 와이너리, 카쉬나 키코의 진가가 부각되는 이유다.   

 

 

 

Roero의 진주, CASCINA CHICCO


카쉬나 키코 농장은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 남동부의 카날레(Canale) 마을 외곽에 포도밭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경치를 가진 언덕 꼭대기에 있다. 이 농장은 1950년대 창업자 에르네스토 파첸다(Ernesto Faccenda)가 네비올로와 바르베라 포도밭을 조성한 이후 3~4대째 로에로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다. 에르네스토는 정육점에서 근무하다가 포도밭을 구입하며 포도주 생산의 길로 접어 들었다. 에르네스토는 ‘Chicu’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별명을 정해 주고 부르는 것은 피에몬테 지방의 오랜 전통으로서 매우 친숙한 풍습이다.

 

지역 방언 Chicu의 이탈리아 표준어가 Chicco이기에 현재 와이너리의 공식 명칭은 ‘키코’다. 2대 페데리코(Federico Faccenda Sr)를 거쳐 현재는 3대째인 마르코(Marco)와 엔리코(Enrico)가 50:50의 동일한 지분을 갖고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현재 이 두 형제들에게는 5명의 4대째 계승자들이 있으니, 카쉬나 키코 농장의 미래는 탄탄하다. 1990년대 농업학교를 졸업한 마르코와 엔리코 형제는 카쉬나 키코의 새로운 출발에 시동을 걸었다. 이때부터 로에로와 랑게 두 지역에서 매우 뛰어난 포도밭들을 구입해 나갔다. 우선, 로에로 지역에서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Anterisio, Granera Alta, Valmaggiore를 확보해 나갔다.

 

최근에는 타나로 강 건너 바롤로 영역을 넘보기 시작했으니, 결국 바롤로 와인을 생산하는 최고의 마을 중 하나인 몬포르테 달바(Monforte d’Alba) 마을의 ‘Castelletto’ 밭과 ‘Ginestra’ 밭의 일부를 확보함으로써 명품 바롤로 생산의 야침찬 첫 발을 내딛었다. 


1980년대 최근에 개조된 와이너리는 원래 있던 지하실을 확장하고, 농가와 포도밭 아래를 파서 광대하게 건설했다. 현대적으로 재구성된 와이너리의 변모된 모습은 놀랍기만 하다. 오크통 숙성실, 와인 보관실, 창고, 와인 선반이 놓여진 긴 복도가 있으며, 특히 오래된 역사적 빈티지 와인들을 따로 보관할 공간은 바위를 안쪽으로 직접 파서 만들었다. 매우 원시적이며 둔탁하게 보이지만 동시에 장엄하게 느껴졌다. 이 모든 연결된 미로의 한 가운데 중앙에는 셀러의 심장과 영혼에 해당하는 ‘바퀴의 방(The Wheel Room)’이 있다. 본문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둥글게 중앙을 향한 12개의 아치로 디자인됐고, 전체 형상은 바질리카 사원의 돔(Cupola) 형태를 이뤘다.

 

이 형상은 로에로 지역을 지배했던 중세 영주들의 문장(Coat of Arms)이었던 역사적인 ‘로에로의 바퀴’를 표현한 것이다.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키코 와인 레이블에 이 바퀴 문양을 넣으면 어떨지 권유해 보기도 했다. 이 바퀴 디자인 셀러를 보면서 키코 농장 파첸다 가족의 뿌리와 지역 사랑을 진솔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항상 전통적 스타일의 고품질 와인을 추구하며, 카쉬나 키코 농장을 로에로 지역의 선도 와이너리로 만든 가족 간의 유대와 전통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CASCINA CHICCO, 보석 같은 와인 라인업


1950년대에 설립된 이 회사는 처음에는 바르베라와 네비올로 와인만을 생산했다. 와이너리는 가족 안에서 세대를 거치며 점차적으로 생산량, 포도밭, 재배 품종, 양조장 등을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중대한 확장과 변모를 겪었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땅을 살 때 항상 포도 재배를 위한 가장 좋은 땅을 찾았다. 그들은 각각의 특정한 테루아에 가장 적합한 품종을 연구했으며, 피에몬테의 위대한 토착 품종들의 고유한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로에로를 넘어 바롤로 지역까지 확장됐다. 이 포도밭들 중 일부는 지난 수세기 동안 훌륭한 와인 구역으로 언급돼 왔던 역사적 밭(Historical Cru)들이다. 


현재 카쉬나 키코는 50여 ha의 밭에서, 14종의 와인을 생산한다. 화이트로서는 아르네이스 품종 와인과 파보리타(Favorita) 품종 와인, 레드 계열에는 바르베라 품종과 네비올로 품종 베이스의 Roero DOCG, Barolo DOCG 와인을 생산한다. 이 중 국내에는 화이트 1종과 레드 2종, 총 3종이 수입되고 있는데, 이 와인들은 시음평에서 소개하겠고, 여기서는 미 수입 와인 중, 필자의 주목을 끄는 와인들을 소개하려 한다. 화이트 와인은 토착 품종인 아르네이스 품종이 주력이며,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안테지오(Anterisio)’ 밭 와인을 생산한다.

 

2종의 바르베라 레드 와인의 경우, ‘브릭 로이라(Bric Loira)’ 밭의 Barbera d’Alba는 새큼한 산미와 과일향이 좋고 가벼운 타닌감의 전형적인 바르베라 스타일인데 반해, ‘그라네라 알타(Granera Alta)’ 밭의 Barbera d’Alba 와인은 보다 구조감이 짜여 있는 진지한 바르베라다. 바르베라 품종은 높은 산미에 짙은 색상, 적절한 타닌을 가지고 있어, 산미를 부담스러워하는 한국 와인애호가들의 입맛에 맞지 않아 외면당하고 있는 대표적 품종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는 바르베라 와인의 산미를 매우 좋아하며, 숙성되면 나타나는 그윽한 부케와 편안한 자태가 마음에 든다.

 

위 두 바르베라 와인도 속히 국내에 수입되기를 고대한다. 랑게 지역이 본연의 아성으로 알려져 있는 네비올로 품종은 로에로 지역에서도 재배되는데, 카쉬나 키코의 네비올로 와인은 토질과 숙성 방법에 따라 랑게와는 다른 표현을 보인다. 까날레 마을의 ‘몸피사노(Mompissano)’ 밭 네비올로는 우아하며 섬세한 반면, 로에로 중심부의 ‘몬테스피나토(Montespinato)’ 밭 네비올로는 아름답고 순수하며 균형잡힌 부드러운 표현이 특징적이다. Roero Riserva DOCG를 가지는 ‘발마죠레(Valmaggiore)’ 밭 네비올로는 웅장한 구조와 집중도가 빼어난 최고의 로에로 지역 네비올로 와인으로 꼽힌다.

 

발마죠레 밭은 로에로에서 뛰어난 품질의 숙성력있는 네비올로 와인을 생산하는 가장 유명한 밭 중의 하나다. 와인을 애호했던 프랑스의 공주이자 사부아 공작부인이었던 크리스틴 마리(Princess Christine Marie of France)와 필립보 백작(Count Filippo of Aglié)은 1640년 이 곳에서 포도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포도밭 경작은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취미였다. 발마죠레 와인은 네비올로의 고전적인 테이스팅 노트인 제비꽃 내음과 산딸기, 블랙베리, 향신료가 풍부한 부케를 가지고 있으며, 강한 타닌감으로 우아한 미감과 멋진 구조를 가졌다. 그러나 역시, 이 와이너리 최고의 작품은 랑게 지역의 ‘Barolo, Rocche di Castelletto’와 ‘Barolo Riserva, Ginestra’다.

 

이 두 와인과 함께 카쉬나 키코는 피에몬테 와이너리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이 중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 최고가 와인 ‘지네스트라 Ginestra’ 밭은 몬포르테 달바(Monforte d’Alba) 마을에 있으며 1800년대부터 특급 품질(superior excellence)의 바롤로 와인을 생산하는 땅으로 기록돼 있는 위대한 밭이다. 키코의 ‘Barolo DOCG Riserva Ginestra’는 매우 우아한 풍미와 미감을 지녔으며, 조밀하고 견고한 타닌감으로 섬세하고 깔끔한 여운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생뚱맞게 키코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그것도 네비올로 품종으로~! 키코의 혁신적인 스파클링 ‘CUVÉE ZERO EXTRA BRUT’은 고전적 샹파뉴 생산법으로 36개월 숙성시킨 후 탄생한다. 상쾌하고 매끈한 친근감에 로에로의 우아함과 바롤로의 강력함을 겸비한 진정한 드라이 스파클링 와인으로서 네비올로 애호가들을 공략할 것이다. 이 스파클링 와인도 수입돼 건배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로에로, 아르네이스 ‘안테리지오’ Roero, Arneis ‘Anterisio’

 

 

아르네이스 품종은 이탈리아 피에몬테를 대표하는 청포도 품종이다. ‘Nebbiolo Bianco’라고도 불리지만, 정작 네비올로 품종과는 아무런 DNA 연관이 없다. 오히려 아르네이스와 네비올로와의 ‘전통적 동거(?) 상황’과 관련이 있는 표현인 듯싶다. 아르네이스 품종은 한동안 잊혀져 사멸 위기에 있었는데, Vietti, Bruno Giacosa 등의 양조장에서 단품종 와인으로 생산되며 명맥을 이어왔다.

 

아르네이스는 1980년대 현대식 화이트 와인 양조공법이 도입되면서부터 그 가치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옛날에 아르네이스는 새 먹이로 주로 사용됐다는데, 내용인즉슨, 아르네이스가 일찍 익는다는 유일한 이유로 이 품종을 네비올로 밭 이랑 사이사이에 번갈아 심었다고 한다. 일찍 익어서 향긋해진 아르네이스 포도로 새들과 곤충들이 몰리는 사이에, 귀한 네비올로 포도들은 편안하게 익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르네이스는 더 귀하고 값비싼 네비올로 포도를 구하고자 완숙기 포도를 파먹는 새들을 유인하는 불쌍한 희생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완전한 자신의 최고 가치를 인정받고 완벽하고도 화려하게 부활했으며, 고급 화이트 와인 품종의 반열에 올라섰다. 


카쉬나 키코 농장의 로에로 아르네이스 DOCG 안테리지오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Anterisio’ 밭은 회사의 역사적 본거지인 카날레 마을에 있다. 이 밭은 카쉬나 키코의 포도밭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041년에 처음 기록됐으며, 로에로 백작들에 의해 고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밭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1500년대에 카날레 인근을 소유했던 말라바일라(Malabayla) 가문 영주들은 이 밭의 토양과 미세 기후를 높이 평가했다. 밭의 토질은 석회 점토질이다.

 

수확한 포도는 매우 특이하게도, 0~2°C의 초저온 보관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그 다음 날 압착을 한다. 이로써 특유의 시원한 미네랄 풍미를 고조시키고, 산도를 보존한다.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고,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서 품종의 순수한 느낌을 강조하는 양조법을 사용한다. 


필자가 시음한 2021 빈티지 아르네이스 안테리지오 와인은 맑고 투명한 크리스탈 뉘앙스의 노란색에 녹색 톤을 함유하고 있어 시각적으로도 매우 청량하게 보였다. 고상한 살구와 상큼한 사과향, 개성있는 카모마일 허브향에 복합적인 향신료가 향긋하게 풍기고, 산미가 풍부해 산뜻하고 균형이 잘 잡혀 있다. 13.5%vol의 준수한 알코올이 주는 힘과 구조감이 좋으며, 내부적으로는 강한 에너지와 응축미를 품고 있는 수준급 화이트다. 마지막 잔의 쌉싸래한 여운이 매우 길게 이어지며, 두 번째 잔을 바로 부르는 마성의 화이트다. ‘안테리지오’ 뀌베는 연간 약 13만 병 정도가 생산된다.

 

<Wine Spectator> 매거진에서는 2015년 빈티지에 87점을 주며,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릴 기본급 화이트 와인이라도 평했다. 다채로운 재료가 들어간 샐러드에 무난히 잘 어울리며, 생선 요리와 오일 파스타, 랍스터, 게, 생굴 등과도 맛갈나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 이제 곧 가을 전어 축제가 시작될텐데, 필자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뼈까지 함께 썰은 전어 세꼬시를 주문해 다시 한번 ‘안테리지오’를 즐길 예정이다. 노파심이지만, 화이트 와인과 회를 즐길 때에는 초장보다는 연한 간장 와사비에 찍어 먹을 것을 추천한다. ‘2020 안테리지오’ 와인은 <Wine Enthusiast> 매거진으로부터 90점을 받았다.  

Price 5만 원대

 

랑게 네비올로 Langhe, Nebbiolo

 

 

카쉬나 키코의 랑게 네비올로 와인은 꾸네오(Cuneo)군의 카스타니토(Castagnito) 마을에 있는 ‘코스타(Costa)’라는 이름의 언덕에 있는 밭에서 재배된 포도를 사용한다. 오래된 문서 자료에 의하면, 이 구역은 네비올로 품종에 최적인 우아한 고급 와인이 생산될 수 있는 특별한 테루아로 기록돼 있는 곳이다. 포도밭의 평균 수령은 약 20년 정도로, 힘과 복합미를 함께 풍길 수 있는 포도를 생산할 나이다. 기본 토질이 사토와 점토가 섞여 있어, 섬세함과 당찬 힘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와인 특성이 나올 수 있다. 수확된 포도는 스테인레스 발효조에서 5~6일간의 짧은 침용 기간을 거쳤으며, 중간 크기 오크조에서 6개월 정도 숙성됐다.

 

필자가 시음한 2020년 빈티지 랑게 네비올로 와인은 전반적으로 부드럽게 퍼지는 중간 강도의 루비색에 자줏빛 뉘앙스를 가진 아름다운 색상을 보였다. 아마도 2~3년 지나면 다소 석류껍질빛 뉘앙스쪽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사실 네비올로 와인은 석류껍질색이나 적벽돌빛이 살짝 감돌기 시작할 때부터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 따라서 이 2020년 빈티지 와인도 2~3년 정도는 충분히 숙성되면 더 좋은 느낌을 만들 수 있다.

 

글라스에서는 야생 베리, 커런트, 제비꽃향이 기저를 이루며, 감초, 검정 후추, 담배 등의 향신료 풍미가 고급스럽게 주변을 감싼다. 부드러운 드라이 당도에 적절한 산미 생동감이 균형을 이루며, 타닌은 벨벳처럼 부드러운데, 다소 ‘까칠한 벨벳’ 같은 질감이랄까? 특유의 발사믹 힌트를 남기며 가늘게 빠지는 여운이 아쉬운 듯 미련을 남기는 신비스런 와인이다. 안심 스테이크, 삼겹살, 불고기, 갈비찜 등 무난한 음식을 추천한다.

Price 5만 원대

 

바롤로 ‘로케 디 카스텔레토’ Barolo, 'Rocche di Castelletto'

 

 

 

포도밭 이름에 사용된 ‘로케 Rocche’는 이탈리아어로 바위, 암석, 절벽, 성채 등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지형–지질학적 용어로는 ‘지질 침식으로 인한 가파른 경사’를 뜻한다. 이 단어를 사용한 다른 포도밭들의 경우와 비교해 보니, 가장 가까운 해석이 ‘길게 능선을 이루는 언덕에서 내려오는 급경사지 부위’를 뜻하는 지형 용어인 듯하다. 즉, ‘카스텔레토 능선 경사지 밭’ 정도로 이해하자. 이 밭은 바롤로 생산 마을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마을인 Monforte d’Alba 마을에 속한 밭으로서, 남서향과 서향 채광이기 때문에 네비올로 품종 재배에 특별히 적합한 구역으로 알려져 있다.

 

토질은 석회 점토질이며, 수확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8월 초반과 후반에 각각 열매 솎기를 진행해 포도의 농축도를 높였다. 10월 중~하반기에 수확된 포도는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서 15일 정도 발효되며, 발효 후에도 한달 정도 추가로 껍질과의 접촉을 통해 색상과 내용 물질을 뽑아낸다. 총 45일간의 발효 및 침용 기간이 끝나면, 2000, 2500 및 5000L 슬라보니아산 오크통으로 옮겨져 30개월 동안 숙성한다. 그 이후에는 다시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로 옮겨 담아 8개월 동안 휴식한 후 병입되니, 총 4년간의 시간 이후 시장에 출시된다. 


필자가 시음한 2018년 로케 디 카스텔레토 바롤로는 짙은 루비색에 석류껍질 색조를 띤 가장자리 뉘앙스가 순하고 부드럽게 눈에 들어왔다. 네비올로 품종의 전형적인 색상에서 중앙 심도가 한층 깊게 보였으니, 아마도 장기 침용의 결과인 듯하다. 와인의 향을 맡으니, 과실향과 향신료, 3차향이 잘 조화를 이룬 매우 우아하고 복합적인 부께를 느낄 수 있었다. 잘 익은 검은 체리와 블루베리의 싱그런 향과 감초와 바닐라, 잎담배의 감미로운 포인트, 마른 장미꽃과 자스민, 곶감, 계피향의 이국적 정취가 저변에 깔려 있다.

 

입안에서는 드라이한 당미와 적절한 산미가 조화를 이루며, 미디엄-풀 보디의 단아한 몸매에서 만져지는 수려한 질감이 느껴질 즈음, 반전되며 등장하는 엄격하며 칼칼한 타닌이 매혹적으로 입안 점막을 엄습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부드러운 몸매와 칼칼한 타닌의 역습에 연신 감탄을 자아내며 한 병을 비웠다. 마지막 잔은 입술에 남아 있는 마지막 한 방울 카스텔레토의 타닌을 음미하며, 목을 젖혀 식도로 내려 보냈다. 귀족처럼 우아하고 기사처럼 단호하며, 왕처럼 엄격한 와인이다. 네비올로 애호가를 위한 최상의 와인이며, 키코 생산진의 품질에 대한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

 

‘2017 Castelletto’ 와인은 <Wine Enthusiast> 매거진으로부터 93점을 받았다. 2018 빈티지는 더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18°C 온도로 2시간 브리딩을 한 후, 안심과 등심 부위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T본 스테이크와 페코리노 치즈, 피에몬테식 송로 리조또를 최상의 페어링으로 추천한다.

Price 12만 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