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el Story] 호텔 건물, 지속가능한 미래 필요해

2022.06.14 11:36:48

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철거로 살펴보는 호텔의 건물

 

남산의 터줏대감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83년 12월 서울 중심가에 22개 층, 700여 개 객실 규모로 문을 연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당시 김종성 건축가가 설계해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코로나19 여파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수년 전부터 경영난을 겪어온 데다가, 펜데믹으로 인해 영업 손실이 막심했기 때문.

 

결국 지난해 12월, 호텔을 이지스자산운용에 약 1조 원에 매입 됐으며, 이지스자산운용은 호텔을 철거하고 2027년까지 오피스·호텔 복합 시설을 건립할 계획을 밝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건축계를 중심으로 많은 담론이 형성됐다. 근대 건축의 역작이라고 불리는 밀레니엄 힐튼 호텔의 건축물을 살려 타 호텔이 들어서더라도 호텔로 존치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마찬가지로 건축물을 살리는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박물관이나 전시장 등 다른 용도로 이용하자는 의견 등으로 지금도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근대 건축의 역작, 밀레니엄 힐튼 서울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1983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김종 성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겨 건축된 근대 건축의 역작이다. 당시 23층 펜트하우스를 김 전 회장의 집무실이자 영빈관으로 썼 던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1999년 IMF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싱가포르 홍룽그룹 자회사인 CDL호텔코리아에 2600억 원에 매각됐다. 병풍처럼 양단이 꺾인 디자인의 호텔 건물은 당시 근대 국내 건축 역사를 새로이 연 공간이었다. 호텔에 들어서면 웅숭깊은 로비가 드러난다. 남산의 내부를 파고들 듯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는 흐름이다. 김종성 건축가는 2021년 GQ 와의 인터뷰에서 “부지가 남산에서 서울스퀘어 방향인 서쪽으로 12m 정도 내려가는 경사진 형태였다. 경사를 활용해 방문객이 대지의 높은 쪽에서 호텔 로비로 들어서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다소 어두운 어감인 ‘지하 1층’이 아니라 ‘Lower Lobby’라고 부르는 까닭도 이곳에 있다. 


4~5층 높이의 층고를 뚫어 공간감을 개방한 디자인은 글로벌 한 근대 건축의 사조였다. 이효상 상무(이하 이 상무)는 “로비 공간 및 공간 구조감 자체가 한 눈에 임팩트 있게 들어오는 것이 특징”이라며 “격조를 높여서 럭셔리한 감각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감재 또한 엄격한 기준으로 선별했다. 김종성 건축가가 ‘제일 많은 공을 기울인 부분’이라고 일컬을 정도다. 우선 전 세계적으로 퀄리티가 높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산 대리석을 수급하고, 대리석 석상은 뉴욕 시그램 빌딩에 트래버틴(석회암 자재)을 시공한 회사를 선별해 직접 서울에 와서 시공 및 감리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로비 층의 마감재는 미국산 참나무 베니어를, 내장재 또한 미국 및 방위산업체로서 명성을 떨친 풍산금속에서 브론즈를 들여와 강직함을 입혔다. 하나의 건물에 당시 최고의 자재들이 모인 셈이다. 이러한 치밀함은 현대에도 ‘촌스러움’이 아니라 ‘모던함’을 남긴다. 스튜디오 익센트릭 김석훈 대표(이하 김 대표)는 “국내에 도입하기 어려웠던 마감재를 해외 공수한 것도 건물에 완결성을 입힌 하나의 예시”라고 전했다. 
 

주변과 함께 발전하는 호텔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남산의 속성을 살려 자연광이 로비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설립된 호텔이기도 하다. 호텔 건물은 주변과 함께 발전하는 경우도 잦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은 1978년 7월 문을 연 한국 최고령 호텔로 꼽힌다. 설립 취지는 이렇다.  당시 외국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남산에 외국인 아파트, 단독 주택을 몰아서 지었는데, 아파트 준공식에 참가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사시설을 포착해 철거하고 호텔을 설립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 인근에 높은 건물이 없어 경호가 용이한 점을 살려 국빈호 텔로 만들려는 복안이 있던 셈이다. 그러한 이유로 1974년 국내 최초로 미국 호텔 체인 브랜드를 달고 하얏트가 위탁 경영을 맡아 하얏트 리젠시 서울을 오픈했다. 실제로 하얏트 리젠시 서울은 미국 정상들이 선호하는 국빈 호텔로 자리매김했으며, 그랜드 하얏트 서울로 리브랜딩 이후 최근까지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묵는다고 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관계자는 “남산에 위치했으며 강남과 강북으로의 이동이 용이한 점도 VIP들이 선호하는 이유로 꼽힌다.”고 밝혔다. 


지금은 조선 팰리스 서울강남이 들어선 르네상스 서울 호텔도 자주 회자되는 건물 중에 하나다. 삼부토건이 1988년 당시 르네상스 서울 호텔의 전신 라마다르네상스호텔을 개관한 이래로 꾸준 히 강남의 랜드마크로서 위상을 떨쳤다. 현재도 ‘르네상스호텔사거리’라는 교차로명이 사용될 정도다. 특히 삼부토건의 의뢰를 받아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해 건물로서도, 김수근 건축가의 유작으 로서도 명성을 인정 받아왔던 호텔이다. 건축물 전반으로 느껴지는 물의 흐름처럼 유연한 곡선은 김수근 건축가의 특징인 ‘한국적 인 모티프’를 잘 활용한 사례로 통한다. 이 호텔은 ‘버선’에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 주요 포인트다. 지금과 같이 고층 건물이 없었던 강남구 테헤란로의 상징이 되기를 바랐던 김수근 건축가의 의도가 담긴데다가 우아하면서도 독특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현재까 지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이 돼 있다.


강릉에 위치한 씨마크 호텔은 미국의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지 어 건축계에서 관심을 모았다. 웅장한 느낌을 주는 럭셔리한 호텔 디자인이 아니라, ‘백색의 건축가’라고도 불리는 리처드 마이어 특유의 밝은 색감이 돋보이는 호텔이다. 이 상무는 “바다 근처에 위 치해 있는 씨마크 호텔의 조건을 잘 활용한 호텔”이라며 “구릉지 에서부터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는 것도 특징이며, 로비에서도 바다를 즐길 수 있는 통창이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연회장으로 이동하는 루트도 빼놓을 수 없다. 좁은 복도부터 시작된 길이 결국은 연회장으로 확장돼 마치 산처럼 연결되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처럼 주변의 환경과 공생하는 호텔, 그렇다면 호텔만의 건축 콘텐츠로 널리 알려진 호텔은 어느 곳이 있을까?

 

건축 구조가 곧 콘텐츠

 


호텔 건축은 많은 의미를 시사한다. 우선 호텔은 공간을 제공하는 사업이니 만큼 건축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로비, 객실, 부대 시설 등 여러 업장이 한 건물에 조화롭게 자리 잡아야 하며, 더불어 이제는 규모보다는 호텔 내의 콘텐츠가 더 중요해지면서 호텔이 선사하고자 하는 콘텐츠 요소를 외관이나 구조에서도 드러내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상무는 “호텔은 일정 주기마다 공간에 대한 솔루션을 받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따라서 호텔만의 독특한 구조로 이목을 끄는 호텔이 존재한다.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이 설계한 ‘포도호텔’은 이름 그대로 ‘포도송이’를 본따 설립됐다. 지붕은 전통적인 제주도 민가의 이미지를 살렸으며, 주변의 지형과 융화시켜 만든 호텔이다. 2003년 7월에는 프랑스 국립 GIME동양 미술관에서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받아 글로벌한 이슈를 끌었으며, 포도호텔에 오기 위해 제주도를 찾는 고객도 많다. 또한 제주도에서도 ‘제주 7대 건축물’로 지정하는 등 가장 제주를 잘 나타낸 자연적인 건물로 평가 받는다. 하나의 제주 랜드마크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김백선 건축가의 마지막 유작인 오월호텔은 ‘오월호 텔’은 ‘오월호텔 건축가’가 연관검색어일 정도로 한국적인 미학이 돋보이는 공간을 자랑한다. 영국의 유명 디자인·건축 잡지 <월페이퍼(Wallpaper)> 웹사이트에 규모가 큰 호텔들을 제치고 게재 된 것. 월페이퍼의 기자가 서울을 여행하던 중 우연히 묵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오월호텔은 외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내수 고 객에게도 인기가 많다. 본지에서 진행한 오월호텔 소개 지면을 살 펴보면, 당시 이상우 총지배인의 말을 확인할 수 있다. “당장 장사가 덜 되고 장기투숙이 없다고 해도 국내 고객에 신경 쓰기로 했다.”면서 “새로운 문화적 공간을 추구하는 고객들이 선호하는 편” 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공간을 즐기기 위해 기꺼이 소비를 감수하는 모양새다.


‘코모도 호텔 부산’은 외관부터 한국식 전통적 외양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비주얼적으로도 쇼킹하다. 호주의 건축가 조지 프루가 부산을 지키는 이순신 장군을 상징화해 강한 함장의 이미지를 재현하고자 세운 이 건물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한옥빌딩이다. 모든 투숙객이 부산의 앞바다를 조망하게 만들고자 단면 앞에 볼록하고 뒤가 움푹 들어간 반원 형태로 만들어 반응이 좋으며, 독특한 내외부 경관으로 외국인 방문객의 포토존이 됐다. 이와 같이 호텔의 건물은 관광에 있어 하나의 콘텐츠이자 랜드마 크로 기능하기도 한다. 공간을 제공하는 사업이니 만큼 초기 설계부터 많은 정성을 들이는 호텔 건축, 콘텐츠와 그에 걸 맞는 포인트를 담아 잘 활용한다면 호텔의 운영이 중단되더라도 호텔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도, 보존할 유산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과 콘텐츠가 결합하면
호텔의 새로운 스토리텔링 가능해져

 


이처럼 건축은 유산과 생활공간 그 어딘가의 영역을 함의하는 만큼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뉴욕에 위치한 ‘아만 호텔’은 1921년 완공한 뉴욕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크라운 빌딩’에서 운영을 시작했다. 크라운 빌딩은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을 지은 워렌 앤 웨트모어가 전통적인 유럽의 고전주의 양식인 보자르 디자인으로 설립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 크라운 빌딩은 아만 리조트에 매입돼 럭셔리한 호텔과 레지던스가 병치된 감각적인 공간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이 상무는 “기 존의 근대 건축물을 호텔로 리뉴얼해 활용한 일례”라며 “숙박공간으로 설립된 건축물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 호텔 양식과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색다른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교토에 위치한 ‘ACE 호텔’은 ‘신관’과 ‘구관’으로 나눠져 있는데, 여기에도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다. 구관은 1926년 근대건축가인 테츠로 요시다가 지은 교토중앙전화국이다. 높은 천장과 아치형 창문이 돋보이는 건물로, 500년 넘게 일본의 왕실이 자리했 던 전통 도시 교토에 위치한 만큼 역사적 의미가 깊다. 건축가 쿠마 켄고는 교토중앙전화국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연결’을 도모 했다. 신관을 지어 구관과 잇고, 두 건물이 만나는 안뜰의 정원에 헤이안 시대(794년~1185년에 해당하는 일본의 정권) 스타일의 구성을 차용한 것이다. 쿠마 켄고는 “교토와 연결되고 주변 구 역에 개방적인 호텔을 건축한다는 구상을 세웠다.”며 “헤이안 시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정원을 포함하고, 있는 성스러운 이 부지는 지역사회, 과거, 현재와 연결되는 장소라고 밝혔다. ACE 호텔은 지자체와의 협업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공기업인 NTT 도시개발 협력관계를 구축해 혁신과 문화재를 결합시키는 과정에서 ACE 호텔을 설립한 것이며,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최대한 보존하고 건축가 및 디자이너를 동원해 현지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건물을 만드는 프로젝트인 것. 

 

 

더불어 도쿄역은 1914년 지어진 뒤 1945년 폭격으로 3층 돔이 무너지는 등 원형이 크게 훼손된 상태에서 2층 건물로 복원됐다. 2007년에는 본격적으로 복원공사에 착공해 2012년 공사를 끝 마치고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당시 수천 명의 시민들로 붐볐으며, 1915년 개관해 수많은 문인 및 정치인, 지진으로 인한 이재민들도 수용했던 도쿄스테이션 호텔을 복원, 현재까지 성업 중에 있다. 근대 건축물을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 고객들이 투숙할 수 있는 호텔로, 역사적 전시관으로 흥행한 것이다. 이렇듯 호텔은 단순 철거, 보존을 넘어 기존 건축물과의 공생을 통해 호텔의 철학 및 스토리를 부여하고, 이를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로 작용하기도 한다. 

 

국내에는 아직 부족한 건축에 대한 관심

 


그러나 국내는 호텔 건축의 스토리텔링도, 콘텐츠 활용 측면에서 도 부족한 편이다. 이는 건축에 대한 부족한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월간 공간>이 진행한 ‘건축 유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대 담에서, 황두진 건축가는 “개발이냐 보존이냐라는 논의가 과연 0과 1의 문제처럼 딱 떨어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0이면 완전히 철거하는 것이고, 1이면 문화재로서 경복궁 관리하 듯이 복원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현실 세계의 건물은 0과 1 사이 어디쯤에 있다.”고 말한다. 생활양식과 밀접해 있기에 고궁이나 유적처럼 철저히 ‘관광용’으로 생각하거나, 아파트처럼 ‘부동산’으 로만 생각한다는 것. 그렇지만 한편 그 고궁과 유적지들 또한 ‘왕이 살았던 곳’, 혹은 ‘옛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고, 우리가 보고 있는 건축물들 또한 하나의 철학이 담겨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차치할 수 없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한때 제주도와 건축계를 발칵 뒤 집은 바로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드로 레고레타의 유작인 ‘더 갤러 리 카사 델 아구아(이하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다. 카사 델 아구아는 제주컨벤션근처에 지을 예정이었던 ‘앵커호텔’과 콘도 분양 을 위해 2층 1279㎡ 규모로 지은 모델하우스 겸 갤러리다. 호텔이 완공되면 갤러리와 호텔 VIP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될 계획이 었으나, 앵커호텔 설립이 사실상 무산, 시공사였던 JID가 호텔과 콘도 용지를 부영주택에 양도하며 문제가 생겼다. 부영주택이 카사 델 아구아를 철거하고 공원을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설상가 상으로 임시건물인 데다가 존치 기간이 만료되면서, 법적으로 철거 대상이 됐다. 당시 서귀포시의 관계자는 “중문관광단지 환경 영향평가 합의 내용에 따라 들어설 수 없는 자리에 지어진 임시 건축물”이라며 “존치 기간이 만료된 이상, 법적으로 철거를 피할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당시 멕시코 정부에서도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 집행 금지에 완고한 입장을 보였으며, 리카드로 레고레타의 유작임과 동시에 아시아에서는 내부까지 공개된 유일한 건물이기에 건축계의 반발이 컸지만, 제주지방법원도 법적으로 철거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 리면서 카사 델 아구아는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건축을 하나의 유기체로

호텔을 하나의 사회로

 

 

 

 

 

 

 

 

 

 

 

 

 

 

 

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철거를 앞두고 현재도 많은 담론이 오가는 중이다. 주된 이야기는 호텔로 운영할 수 없다면, 건축물의 기능을 할 수 있게끔 다른 용도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지난 4월 서울 시청 앞 도시건축전시관에서 ‘힐튼호텔과 양동정비지구의 미래’를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을 당시, 김종성 건축가는 “건축의 수명은 100년도 갈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며 기능과 용도는 바뀌게 마련”이라며 “기존 640실을 200실로 호텔로 만들고 기존 호텔의 아트리움을 보존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세훈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역시 “밀레니엄 힐튼 서울처럼 대형 상업건물을 현대건축을 위해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그 건물이 잘 활용되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그렇지 않을 땐 자칫 건축물을 박제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건축은 ‘생명체’라는 이야기가 있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살펴보면, 그는 도시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바라본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전성기를 지낸 후, 쇠퇴하고, 죽는 것처럼 도시의 여러 부분도 태 어나서, 성장하고, 나중에는 죽는다고 설명한다. 건축물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만 도시설계자의 의도대로가 아니라 자연발 생적인 방식에 의해 오랜 시간 걸쳐 진화해왔다는 면에서,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자생적인 유기체라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도 박물관에 박제된 유물처럼 전시 된다면 생을 살아간다고 할 수 없다. 다 허물어 버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수익창출만을 목표로 한다면 기존의 역사도 함께 허물어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스튜디오 익센트릭 김 대표에 따르면 ‘도쿄 임페리얼 호텔’의 경우 건축을 교과서로 배울 때 접하게 되는 대표적인 건물이라고 한다. 도쿄 임페리얼 호텔은 1890년에 문을 열었다. 전설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도쿄 임페리얼 호텔은, 대표 호텔로 명성이 높아지면서 당대의 귀인들이 찾는 문화적인 공간으로 발돋움 했다. 설계부터 심혈을 기울여 관동대지진 속에서도 안전했으며, 1964년 도쿄올림픽 기간 중 공식 만찬행사는 모두 이 호텔에 서 열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신축이 불가피해져 1967년 새롭게 확장했지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임페리얼 호텔의 자재를 지금도 호텔 내 전시해놓아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처럼 하나의 공들인 예술 작품으로 기능하는 밀레니엄 힐튼 서울 또한 역사와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왔다. 


1988년 9월 2일 동아일보 기사를 확인해 보면, ‘서울올림픽’ 참가 외국인의 신변 안전을 위해 힐튼 호텔 출입구에 금속 탐지기를 설치, 출입자의 검색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제 1차 남북 고위급 회담 본회담의 만찬도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이었다. 당시 시내에 많은 시민들이 나와 회담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는 모습이 드러난다. 밀레니엄 힐튼은 근대의 사조를 반영하는 건축사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근대의 역사와 함께 성장한 데에도 폭넓은 의의가 있는 것이다. 


호텔은 단순 투숙객, 정재계 인사 등 목적을 지니고 방문하는 이들부터 때로는 연회, 커뮤니티 형성 등 누군가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2022년 취임한 새로운 대통령도 호텔에서 만찬을 가진 지금에도, 매일 새로운 역사가 펼쳐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밀레니엄 힐튼 서울 또한 철거하고 단순히 새로운 건물을 지어 사진으로만 기록하지 않고 공간을 새롭게 추가하거나 리뉴얼해 기존의 역사를 되새김질할 시간을 주는 건 어떨까? 이미 철거는 결정됐고, 다시 무를 수도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 수 없이 반복될 수 있는 제2의 밀레니엄 힐튼 서울을 막기 위해서는 한번 고심해볼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