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윤 기자의 생각모으기] 복합문화공간이 된다는 것

2022.03.11 09:00:28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학교가 광화문 인근에 있었던 터라 그곳을 몇 년간 수도 없이 지나다녔다. 그리고 언제였는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의 구절이 광화문 한복판에서 눈에 들어왔고, 한 사람이 지닌 가치를 ‘일생’이란 단어로 표현한 방문객은 그 후로부터 마음 한 켠에 남아있는 시가 됐다.


서울프린스호텔의 ‘소설가의 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번 달엔 문화예술 콘텐츠를 취재했다. 언젠가부터 호텔을 당연하게 수식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호텔이 과연 어떤 공간이고, 호텔에서 담고 있는 ‘문화’란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던터였다. 그리고 취재를 하면서 수많은 시민들에게 울림을 줬던 광화문 글판이 1991년도부터 매년 네 번씩 옷을 갈아입어왔고, 그 글귀는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가 시민들의 공모작과 선정위원들이 발굴한 추천작을 두고 여러 차례의 투표와 토론을 거친 끝에 광화문을 장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광화문 글판은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2002년 한일 월드컵과 여러 차례의 촛불 시위 등에서부터 지금의 코로나19까지 서울 시민의 곡절을 함께 지켜왔다. 그리고 이제는 광화문 교보타워를 비롯해 강남 교보타워, 부산, 광주, 대전, 천안, 제주도 등 전국 7개 사옥에 게재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부드럽지만 강인함을 견지한 문학의 힘은 기쁠 때는 물론 힘들고 지칠 때 위안이 돼 주고 있으며, 교보생명은 문학과 문화가 지닌 고유의 기능을 사회공헌의 측면에서 가치 있게 녹여내고 있었다.


그동안 호텔은 각종 예술품을 전시하거나 음악이나 미술, 책을 매개로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더욱이 코로나19 이후에는 일상적인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생활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고객의 경험과 감성을 극대화하기 좋은 재료라는 이유로 문화예술 콘텐츠가 속속 호텔에 접목되고 있다. 본지도 소설가의 방에서 시작된 호텔 북스테이와 문화예술 콘텐츠 기사 사이에 소설가의 방에서 묵었던 김덕희 작가가 당시 호텔 생활의 추억을 회상하며 작성한 에세이를 게재했다. 편집을 담당하면서 따끈따끈한 원고를 가장 먼저 읽었는데 역시 작가의 글은 남달랐고 그동안 우리 매거진에서 다뤄왔던 기사와는 또 다른 일렁임과 호텔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일본인과 중국인 고객들로 가득 차 오히려 내국인들에겐 외면 받던 명동은 1950년대와 60년대 문화예술의 근거지였다. 그리고 김덕희 작가에게 그곳은 그리스 산토리니 해변과 다름없는 최고의 안식처였다. 호텔리어로서 으레하는 업무라 당연하게 여겨졌던 말 한마디가 그에게는 대우받은 소중한 기억이 됐다. 그렇게 서울프린스호텔이 2014년부터 남모르게 꾸준히 지원해왔던 문화예술이 8년의 세월을 입고 이번 <호텔앤레스토랑> 3월호에도 새로운 메시지를 담았다.


명동으로 취재를 가는 길, 티마크그랜드호텔 입구에 ‘힘내라, 대한민국’이라 적혀있는 플랜카드를 본 일이 있었다. 코로나19로 호텔이 어려운 와중에도 이 시국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문장이지만 7글자에 충분히 담겨 있는 듯해 왠지 모르게 찡한 느낌이 들었다. 2020년 코로나 초기,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은 270여 개의 아시아지역 호텔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스마일 모양으로 호텔 외벽을 장식했고, 밀레니엄 힐튼 서울 또한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객실 불을 밝혔다.

 

비대면이니 AI니 로봇이니, 호텔에도 많은 변화가 있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이 빈 자리를 메우는 ‘공간’으로서 호텔은 문화와 예술을 통해 그 생기를 돋우고 있는 듯 보인다. 앞으로는 그림이나 예술품뿐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이 가지고 있는 힘, 그리고 가치를 통해 보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전할 수 있는 호텔의 메시지가 무궁무진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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