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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철의 의전 노하우]왕의 조종 솜씨와 왕비의 패션쇼

호텔&레스토랑 기자  -0001.11.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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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1983년 9월 10~13일까지 중동 국가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과 중동지역의 관계는 1970년대 중동건설 붐을 타고 급격히 성장했는데, 이를 통한 중동에서의 한국 국력 신장은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대 아랍권외교 강화는 대 이스라엘 외교의 후퇴를 수반했으나 한국에게 제 3세계 외교역량 성장을 의미했다.
1980년대 들어 중동 건설 붐은 퇴조하다가 제 5공화국에 들어서 평화통일 기반조성과 자원 확보 강조를 위해 대 아랍권 외교가 한층 강화됐다. 이에 따라 1983년에는 후세인 요르단 국왕, 1984년에는칼리파 카타르 국왕의 방한이 이뤄졌다.
1983년 9월 10일, 후세인 요르단 국왕은 직접 특별기를 몰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영국 왕실 공군대학에서 조종술을 익힌 그는 초음속 제트기를 조정하는 유능한 조종사로 이 날도 손수 조종간을 잡은 것이었다. 아랍 온건 국가의 원수로서 최초 방한한 후세인 왕과 왕비를 맞기 위해 대통령이 공항까지 나갔는데, 숙소인 호텔까지 동행해 8분간 환담을 나눴다. 내용은 이러하다.
“한국에 후세인의 왕비가 아름답다는 소문이 나있다. 그래서인지 오늘 연도에 다른 때에 비해 많은 환영 인파가 나온 것 같다.”는 대통령의 말에 “이렇게 성대한 환영식을 베풀어 주고 많은 국민들이 연도에서 환영 해줘 우리의 마음이 완전히 사로잡혔다.”고 후세인의 왕이 답했다. 이에 대통령은 “일정이 꽉 차서 피곤하겠다.”며 “평소 여행을 즐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서 편히 휴식하기 바란다.”는 인사를 남기고는 대화를 마무리했다.
필자가 일했던 호텔 22층에 여장을 푼 후세인 왕 내외는 3박 4일 동안 머물렀다. 호텔에서는 더운 나라에서 온 국빈의 성향에 맞춰 실내온도를 기존보다 조금 더 높은 20℃에 맞추는 등 배려를 보였다. 또한 대연회장에서 국내 경제 3단체의 요르단하심왕국 후세인 국왕 일행을 초청해 오찬을 베풀 때는 건배주도 논알콜 음료로 대체했었다.
20세기 현대사에서 30여 년의 장기 원정을 끌어가면서도 국민의 신망과 국제사회의 호평을 잃지 않았던 후세인 요르단 국왕은 ‘중도 노선을 걷는 합리적인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표현은 그의 인물됨을 말할 때 있어 전형적이고 안이한 평판이다. 오히려 후세인 국왕을 아는 사람은 신중과 과단, 온유와 권위, 시련과 극복, 고립과 화합을 한 몸에 지닌 복합적 성격의 소유자라고 얘기한다. 이슬람의 창시자인 사도 모하메드와 39대손이자 아랍 독일 및 통합운동을 전개하던 샤리프 후세인 이븐 알리(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하다.)의 증손자이기도 한 그는 아랍의 단합, 관용, 정의 및 신앙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 또한 1년에 50~60여 차례 국가 정상들과 만나는 등 노력한 결과, 후세인 국왕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요르단을 세계 으뜸의 원조액을 받는 나라로 만들었다. 삼엄한 경호와 철통같은 방탄차로 무장을 해야 비로소 밖을 나서는 여느 지도자들과 달리 별다른 경호 없이도 거리를 활보하는 ‘자유롭고 따뜻한 영주’로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한편 그는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는데 모험가이자 스피드광, 만능 스포츠맨으로서의 관록도 만만치 않다. 사냥과 말타기, 스쿠버 다이빙과 심해낚시를 즐길 뿐 아니라 요르단에 최초로 수상스키와 요트를 도입, 보급시키기도 했다.
다부지고 무뚝뚝한 사나이의 면모와 다양한 경험에서 얻어진 인자한 면모를 동시에 갖춘 후세인 국왕, 그와 함께 내한한 누르 알 후세인 왕비는 의전이나 격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미국 여성으로 1978년 6월 왕과 결혼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적극적이고 현대적인 미인인 누르 왕비는 국왕보다 16세 연하로 원래 이름은 리자 할라비다. 아버지는 팬암 항공사 사장인 나지브 할라비로 두 사람을 소개시킨 장본인이다.
일과 모험을 찾아 요르단에 갔다가 왕비가 된 할라비 양은 회교국 왕비로서의 역할에 열성과 집념을 쏟아 부어 아랍인이 아니라는 핸디캡을 무난히 극복했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아름다운 미모를 돋보이게 하는 패션과 미용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후세인 국왕 내외의 짐에는 캐비닛이 있었는데 200여 벌의 의상이 담긴 이 캐비닛들은 용도별로 알기 쉽게 분류돼 있었다. 1시간 마다 다림질을 부탁할 정도로 옷 매무새에 유난히 신경을 쓴 누르 왕비는 시간이 날 때마다 들락거리며 옷을 갈아입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3층에는 항상 미용사가 전속으로 대기해 있었다.
후세인 왕의 네 번째 부인인 누르 왕비는 국왕보다 키가 10cm 가량 더 컸고,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인텔리 여성이었다. 그림을 매우 좋아해 용인의 미술관을 관람했으며 호텔 내 그림에 대해서도 좋은 인상을 받은 것을 알고 호텔 직원들이 호텔 내 모든 그림에 대한 자세한 스토리텔링을 곁들였다. 이처럼 후세인 국왕 내외는 멋진 용모와 생활태도로 그 당시 우리 호텔 직원들을 매료 시켰을 뿐 아니라 세련되고 깔끔한 매너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을 떠날 때도 직접 비행기를 조종했던 후세인 국왕은 의전장을 통해 라이터와 시계 같은 선물을 호텔 사원들에게 나눠 줬다. 이 선물은 그가 투숙했던 우리 호텔의 환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다.


남재철
(주)아이앤비컨설팅 대표/대림대 교수
남재철 대표는 20년 간 국내 최고 품격을 자랑하는 호스피탤

리티 서비스업에서 경험한 VIP 환대서비스 노하우를 바탕으

로, 품격 있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정부 및 공공

기관 기업체 대상으로 행사 및 VIP 의전서비스 전문 대한민국

 1호 강사로 왕성한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