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선 칼럼니스트 기자 2024.12.07 08:46:36
3대째 진주를 길러내고 가공을 해 온 회사가 바닷가에 리조트를 지었다. 바다의 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연과 지역을 살리기 위해 그들이 찾은 해답은 서큘러 투어리즘이었다.
서큘러 경제와 서큘러 투어리즘
‘서큘러 경제(Circular Econommy)’는 가능한 오랫동안 기존 재료 및 제품을 공유, 임대, 재사용, 수리, 개조 및 재활용하는 생산 및 소비 모델이다.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손실, 폐기물 및 오염과 같은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순환 경제에 필요한 세 가지 원칙은 폐기물 및 오염 방지, 제품 및 재료 사용 유지, 자연 시스템 재생이다.
‘서큘러 투어리즘(Circular Tourism)’은 이러한 서큘러 경제 모델을 관광에 적용한 것으로, 관광을 통해 지역 경제를 돕는 동시에 환경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는 것을 말한다. 해변 리조트나 해양 공원이 있는 관광지는 바다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그냥 버리지 않고 다시 사용을 하거나, 바다에서 나온 플라스틱이나 유리병 같은 쓰레기를 재활용해서 지역 예술가들이 기념품이나 장식품을 만들 때 사용하기도 하는 것도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바다를 깨끗하게 지키면서도 아름다운 해변을 즐길 수 있고, 나아가 지역 경제도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순환 경제에 기반을 둔 호텔이 ‘COVA KAKUDA’다.
아고만의 진주 양식장을 호텔로
아고만(英虞湾)은 일본 진주 양식의 발상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오래전부터 진주를 생산해 온 기업이 바로 ‘카쿠다 진주 주식회사(覚田真珠株式会社)’다. 1931년에 설립된 카쿠다 진주 주식회사는 바다에서의 진주 양식부터 목걸이 제작까지 전 과정을 일관되게 다루는 진주 회사로, 제품의 높은 품질을 인정받아 해외 바이어들에게도 신뢰를 얻어 온 기업이다. 현재는 이 회사의 3대째 사장인 카쿠다 요우지(覚田譲治)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왜 대대로 성공적으로 경영을 해 온 진주 회사가 리조트 사업에 나서게 된 것일까?
카쿠다 사장은 어린 시절부터 아고만을 자신의 놀이터 삼아 지내왔다. 초여름이면 눈앞의 바다에서 해조류를 직접 잡아 집에서 요리해 먹었고, 뒷산에서는 산복숭아를 따 이웃들과 나눠 먹었다. 그의 부모님 또한 지역에서 수확한 것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카쿠다 사장은 환경 오염으로 인해 점점 진주 양식이 어려워지는 경험을 하며, 자연과의 공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의 중요함을 깊이 깨달았다.
가업을 이어받은 후, 그는 아고만의 자연에서 배운 이 가치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동시에 아고만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마음먹었고, 그 결심의 결과가 바로 이세시마 국립공원 내의 약 4만m2에 이르는 자사 부지에 세운 체험형 리조트 빌라 ‘COVA KAKUDA’다.
자연과 공생하는 호텔 만들기
호텔 COVA KAKUDA의 시작은 마치 밀림처럼 얽혀 있던 숲을 재생하는 작업에서 출발했다. 카쿠다는 자연과의 공생을 실현하고자, 그가 목표로 하는 ‘순환’의 개념에 따라 숲을 다시 숨 쉬게 하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은 숲에서 나무를 베어 장작으로 난방을 하거나 음식을 만드는 데 쓴다. 빈 자리가 생긴 숲에는 바람과 빛이 들어오고, 그 사이로 흐른 비는 바다로 영양분을 실어 나르며 바다 생명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다시 인간에게 돌아와, 자연과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순환을 완성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카쿠다는 임업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숲에 빛을 들여보내고, 베어낸 나무는 스토브나 사우나의 연료로 사용하기로 했다. 게다가 이 장작 패기 작업을 게스트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액티비티로 구성했다. 얽히고 설킨 나무들을 과감히 잘라내자 빛이 숲속으로 들어오고, 새로운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숲의 재생과 함께 추진한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사토우미(里海)’의 정신을 담은 농작업이었다. 사토우미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바다를 의미하는 일본의 독자적인 개념으로, 해양 생태계가 사람의 활동과 지혜에 의해 유지되며 지속가능한 어업과 관광이 이뤄지는 지역을 일컫는다. 카쿠다는 이를 리조트 운영에 반영하고자 했다. 그는 ‘밭에 준 비료가 결국 천천히 바다로 흘러들어가 조개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는 자연의 순환에 주목했다. 바다의 은혜를 받아 진주를 양식하는 사람으로서, 카쿠다는 조개들에게 영양을 돌려주는 농작업의 중요성을 느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자연과의 공생을 위해 카쿠다가 주목한 또 다른 과제는 아고만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던 쓰레기 문제였다. 100년도 더 전부터 이 지역에서 이뤄졌던 진주 양식과 가공산업 등으로 인해 조금씩 쌓여온 쓰레기는 아고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카쿠다는 매년 지속적으로 쓰레기를 치워 왔으나, 자신들만이 아니라 어부들과 관광객들 모두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깨끗해진 바다와 양식장을 통해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되찾고, 지역 주민들도 더 나은 바다를 가꾸는 데 관심을 갖게 되리라 기대했다.
이처럼 세 가지 큰 과제를 설정한 카쿠다 사장은 본격적으로 마을 만들기에 착수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카쿠다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 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COVA KAKUDA의 지배인으로 취임하는 아마하(天羽)였다. 아마하는 숲과 바다의 재생, 그리고 되살아난 바다에서 진주를 채취하고자 하는 카쿠다의 뜻에 깊이 공감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그는 유럽과 일본에서 진행되는 에코투어리즘을 경험하며, 환경을 체험하는 숙박 시설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아마하가 말하는 가치는, 환경을 의도적으로 미화 하는 것보다 숙박객들이 문제를 직접 보고 느끼게 하는 데 있었다. 유럽의 에코투어리즘 리조트에서도 바다로 떠내려온 쓰레기를 그대로 보여주며, 함께 청소하는 활동을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을 기반으로 아마하는 ‘떨어진 쓰레기 하나를 줍는 것도 하나의 액티비티’로 봤고, 동시에 아고만에서의 낚시 체험에서도 굳이 깨끗하게 정비된 바다를 보여주기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사실 그대로 담는 것에 주안을 뒀다. 카쿠다는 아마하 지배인과의 협업을 바탕으로COVA KAKUDA를 오픈하게 된다.
진주 같은 빌라의 완성 ‘COVA KAKUD’
자연과의 공생을 테마로 탄생한 COVA KAKUDA는 약 70㎡ 크기의 스위트 빌라 4채로 구성돼 있다. 이 빌라들은 카쿠다 진주 주식회사의 옛 진주 양식 가공장에서 나온 목재 기둥을 활용해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하며, 각 빌라에는 침실과 거실, 아고만과 연결된 데크 테라스, 욕실을 갖추고 있다. 특히, 두 채는 프라이빗 사우나까지 마련돼 있어 한층 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벽과 개방된 천장 기둥이 어우러진 객실 내부는 아고만의 생활을 담은 나무 뗏목, 그물, 바구니 등 소품들로 채워져, 머무는 동안 현지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아고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탁 트인 전경은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완벽한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한다.
COVA KAKUDA의 다이닝 ‘KAZO’에서는 이세시마 지역의 신선한 새우와 다양한 조개류, 그리고 마쯔자카 소고기 등을 활용한 일본식 ‘이노베이티브 퓨전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이 지역의 매력을 요리에 담아 손님들께 전하고 싶다.”는 카쿠다의 바람이 담긴 요리들로, 한 접시 한 접시가 이세시마의 자연을 느끼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들이다. 진주 회사의 특성을 살린 진주 공예 체험부터 밤하늘의 별을 찾아 떠나는 야간 크루즈, 생굴과 새우를 직접 수확하는 체험, 스노클링과 카약 등 활기찬 프로그램들이 준비돼 있다. 더불어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워크숍도 마련돼 있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지역의 일상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COVA KAKUDA는 단순히 호텔을 넘어 자연과의 공생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순환 경제를 기반으로 한 리조트로 진주 양식, 어업, 농업에 의존해 온 지역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가치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쓰레기 문제로 오명을 얻었던 지역이 성찰과 발전을 통해 조용한 혁신을 일으키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따뜻한 울림을 전한다.
사진 출처_ https://cova-iseshima.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