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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STORY] 마음이 따스해지는 칼국수

이욱 칼럼니스트 기자  2024.11.09 08: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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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여름은 여느 때보다 무척이나 더운 날이 지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을을 그리워하고, 들판에 익어가는 곡식과, 저녁녘 붉은 노을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날을 보내면서 떠날 기색이 없는 더위는 언제 가시나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따스한 국물을 찾게 하고,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며, 자연 앞에 초라해 보이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바라보게 한다.  


찬바람이 불 때면 누구나 소울푸드로 칼국수를 한번쯤 생각하고, 그 옛날 할머니가 흰가루 펄펄 날리며 홍두깨로 넑직하고 얇게 밀어 칼로 쓱쓱 썰어 만들어 주시던 칼국수의 애환이 가슴 한켠에 남아 있을 것 같은 오늘 하루를 우리는 언제 그랬냐면서 또 즐기며 내일을 기다린다.

 

 

대칼국수, 우리 민족의 아픔이 묻어 있는 음식 


칼국수는 1607년 조선시대 가장 오래된 한글 요리책인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에 ‘절면(切面)’이라 기록돼 있다. 다만 지금과는 다르게 밀가루가 아닌 메밀가루가 주재료였다. 당시의 조리법은 면을 따로 삶거나, 삶은 면을 찬물로 씻는 과정을 거쳤다. 경상남도 일부 지역에서는 지금도 면을 따로 삶는 방식을 사용한다. 현대와 같은 요리법은 해방 후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칼국수의 대중화를 바라보면 우리 민족의 아픔이 묻어 있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한국 면요리의 시작


일제강점기 시절 곡물하치장 주변에 제분업과 제면업이 발달하면서 우리의 면식은 일일이 표현하지 못하는 가슴 저민 사연을 담고 자연스럽게 면요리가 발전하게 됐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과 인천은 원조물자인 밀이 들어오자 면식 대중화의 길을 개척하듯 구포국수, 밀면, 비빔당면, 이북냉면, 중국 면식(인천차이나타운)과 함께 시장칼국수가 정착하고 전국 각 지역의 칼국수 문화는 대중화가 됐다고 할 수 있겠다. 


대전은 일제강점기시절 철도 물류의 중심지이며 호남선과 경부선이 교차하는 철도 중심지다. 한국전쟁 이후 구호물자 수송에서 밀의 보관소가 있었으며 대표적인 밀가루 유통소비의 중심지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면요리가 발달하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대전시민의 칼국수 사랑이 남다른 지역이 됐다. 

 


배식이 주식이었던 시절 밀가루 음식이 서민음식으로 자리매김하며 시장 음식 중에서도 큰 대접에 가득 담아주던 칼국수 한 그릇은 저렴하지만 배를 든든히 채워주던 음식이다. 칼국수집이 시장의 중심이 될 정도로 시장 칼국수는 그 시절 대표 음식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가슴 아픈 역사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큰 역사적 사건 앞에 하루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서민에게는 고마운 음식이 칼국수이기도 했으며, 분식 장려 운동시기에는 손쉽게 만들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 고맙고 미더운 음식으로 칼국수가 최고가 아니였겠나 싶다.

 

 

다양한 칼국수


우리가 즐겨 찾는 음식 중 칼국수만큼 다양한 종류가 또 있을까? 서울 경기지역의 사골칼국수와 닭칼국수, 서해안의 바지락칼국수, 동죽칼국수, 강원도의 장칼국수, 전라도의 팥칼국수, 제주도의 해물칼국수, 충청도의 얼큰이 칼국수, 경상도와 대구의 누른칼국수(면에 콩가루를 섞음), 울릉도 따개비 칼국수, 대구의 육개장 칼국수, 콩칼국수 등 내용물에 따른 메뉴도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사골육수, 해물육수, 채수 그리고, 고명에 따라 다양한 칼국수를 선뵈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긴 겨울을 나야하는 우리들에게 따스한 육수와 쫄깃한 면발은 어느 진수성찬 부럽지 않은 최고의 식사가 아닐까?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강원도 장칼국수는 우리 전통 음식의 기본인 ‘장(醬)’으로 된장과 고추장을 육수, 채수, 해물육수에 깊은 장맛을 더함으로 구수한 맛과 칼칼함을 통해 거친 속을 달래주는 시원함에 다양한 고명으로 풍미를 한 번 더 올려주니 칼국수의 무궁무진한 변신이 아닌가.

 

칼국수집 없는 동네가 있을까


여행을 하다보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먹는 것에 진심을 보이게 된다. 한국전쟁 이후 구호물자 밀가루가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칼국수가 서민음식으로 널리 보급됐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대표 면식으로 각 지역마다 독특한 색을 가지고 다양한 칼국수집들이 성업 중이다. 필자 역시 칼국수를 좋아해 어느 지역을 방문하더라도 시장칼국수 집을 꼭 방문한다. 시장칼국수를 보면 그 지역의 식재료가 보이고 음식문화가 보이기 때문이다. 흔히 가볍게 한 끼 먹는 것이 칼국수라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힘들게 살았던 그 시절 구호물자 밀가루에 물을 섞어 반죽해 별 재료 없이 한 끼 만들어 먹을 수 있었기에 그런 표현을 한 것이다.

 

사실 반죽부터 썰고 삶아내고 고명을 준비하는 등 모든 과정에 정성이 들어가는 수고가 있어야 가능한 한 그릇의 칼국수가 탄생한다. 찬바람이 불어오면서 추억여행을 하고 싶다면 주변의 칼국수집을 방문해 보자. 단풍은 지고 없지만 95세 할머니가 가게 앞 평상에 앉아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고 있는 청송 주왕산으로 칼국수 한 그릇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