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엽 변호사가 책을 읽고, 호텔산업의 독자는 남기엽 변호사와 함께 책을 읽습니다. 사람과 접촉하고 상대를 읽어 내 마음을 비우게 하는 호텔산업에서 자아를 채우는 일은 중요합니다. 육체와 두뇌, 나아가 감정까지 저당잡히는 서비스업계에서 포기될 수 없는 책을 소개하고, 함께 읽어나갈 것입니다.
필자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처음으로 재고(再考)하게 된 계기는 모 언론사 인턴을 하며 공단 취재를 다닐 때였다. 당시 체코에서 철강 사업을 하던 한 중소기업인은 김우중 씨가 제3국에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덕에 우리가 먹고 살고 있노라 했다. 이렇게 말하는 기업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또 한 번은 잘 알고 지낸 모 경제학자의 탄식이었다. IMF 때 신흥국에 공격적 투자를 했던 대우가 조금만 더 버텼다면 현재 기업계는 훨씬 더 발전적이었을 것이라는 가정법. 1990년대 후반 공격적 기업 인수합병으로 재계 순위 2위까지 차지했고, 오일쇼크 때 오히려 몸집을 불린 경험을 살려 빚을 안고 모험을 했지만 결과는 모두 아는 대로 유동성 위기로 종결됐다. 막대한 부채의 만기일이 다가오며 자금난을 겪었고, 분식회계가 드러나며 공중분해됐다. 이후 범법자로 남게 된 그이지만 요즘 혁신 기업이라는 것이 결국 기존 유통망을 공유하는 플랫폼이 대부분인 것을 감안할 때, 실로 판로를 개척해 온 자신의 생각을 ‘젊은이’들에게 남긴 이 책은 언제가는 읽으리라 생각하던 터였다.
그는 가난했다. 하지만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이었단다. 가장 잘 사는 기업인이 아닌 존경받는 기업인이 꿈이라던 그의 고백은 말로(末老)에 대비되지만, 생각은 거침없었다. 젊은이들에게 끊임없이 낙관론을 가질 것이며, 자기 철학을 확립하라 했다. 아울러 대우 역시 ‘내 것’이 아닌 ‘사회의 것’이기 때문에 이 사회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쓰여야 함을 천명했다. 보건, 교육, 학술, 예술을 활발히 지원해 온 지금도 활동 중인 ‘대우재단’은 그 소산이다.
필자 역시 어느덧 연차가 쌓이며 나이듦을 부정하는 신세가 됐지만 그가 이 책에서 당부한 ‘젊은이를 향한 메시지’는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비슷했고, 여러 ‘젊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 충분한 문장들로 넘친다. 모든 참다운 삶은 ‘만남’에서 비롯된다며 철학자 마틴 부버의 구절을 인용한 대목이나 인생은 ‘판단’의 연속이니 넓은 선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라는 것 또한 곱씹어볼 대목이다. 왜냐하면, 호텔리어인 당신 만큼 다양하고 또 진취적인 카테고리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직종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마음이 일견 편해진 부분도 있다. 여행을 즐기며 쓰는 재화를 ‘탕진’ 대신 ‘투자’라 부르는 필자에게 그는 “젊음은 여행할 권리가 있다.”며 용기를 준다. 우리는 오지 않을 미래와 이미 지나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기에 미래의 우리에게 카드값을 떠넘기지만 그는 “우리가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단 한 번 뿐이다. 그러니 그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그 순간을 사라.”고 권한다.
그는 호텔사에도 남다른 족적을 남겼다. 일개 호텔의 폐업이 철거와 보존 사이의 논란까지 일으킨 것은 보기 드물다. 그 주인공인 힐튼 서울은 대우그룹이 주인이었고 23~24층 복층 구조의 펜트하우스는 저자가 ‘세계경영’을 진두지휘한 산실이었다. 해프닝도 있었다. 힐튼 서울의 펜트하우스 객실을 연 12만 원(그러니까 1박에 328원)에, 25년 간 임차하기로 하는 임대차 계약을 힐튼 서울과 맺은 것 역시 저자다. 나중에 힐튼 서울의 주인이 바뀌면서 저게 말이 되느냐, 배임 행위 아니냐는 소송이 있었지만 승패를 거친 끝에 저자가 계속해서 쓸 수 있게 됐다(하지만 대부분 비어있었다고 한다).
그의 책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옛날을 추억하며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지 말라.”는 문장이다. 과거는 당신의 눈을 가리고 미래의 시간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 이 책을 읽은 14년 전 당시에도 공감이 됐는데 지금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역설적으로, 저자야말로 과거를 추억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한국 현대사에 족적(足跡)을 남겼는데 재판 이후 쫓기듯 나간 베트남에 칩거 생활을 할 때에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 대목에서 나는 적절한 추억은 필요한 자기보상임을 떠올린다.
현대 사회의 경영 전략 또는 금융시장을 뒤흔든 Carry Trade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별다른 투자 전략도 없으며, 일부 경영 관련 내용도 현재 더는 유효하지도 않다.
그런데 호텔은 젊은 사람들이 일하는 직장이다. 그리고 애티튜드도 젊어야 한다. 따라서 대한민국 기업사의 정점에 서며 패기 넘치게 남긴 많은 메시지들은 오늘날 젊어야 할 당신에게도 충분히 심장을 뛰게 할 비탈을 지어줄 것이다. 그러니 가슴으로 읽을 것을 권한다. 베트남에 칩거하며, 휠체어 위에 앉아 추징금 안 내고 버티며 세상을 떠난 그를 상상하며 읽는 것은 머리로 읽는 행위이기에 금물. 그리고 개인적으로, 심정적으로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진정성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이해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